[신간] 가난 사파리·원본 없는 판타지

여자는 왜 자신의 성공을 우연이라 말할까

▲ 가난 사파리 = 대런 맥가비 지음, 김영선 옮김.
스코틀랜드 빈민 지역에서 자란 래퍼 겸 칼럼니스트인 저자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가난과 학대, 중독과 폭력에 노출된 사람들의 마음 풍경을 신랄하고 위트 넘치게 담아낸다. 저자는 2017년 영국 그렌펠 타워에서 발생한 화재 이야기로 책을 시작하면서 끔찍한 인명 손실을 불러온 이 사건에 관한 사람들의 관심을 '가난 사파리'라고 부른다.

이곳에 살던 하층계급 서민들의 존재는 오랫동안 보이지 않고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지만, 화재를 계기로 갑자기 이 사람들의 삶은 다른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게 됐다.

저자는 "진열창 앞 안전한 거리에서 원주민을 잠시 둘러보는 사파리가 끝나고 나면 모두가 그에 대해 서서히 잊어버리고 만다"고 냉소적으로 말한다. 저자는 어린 시절 알코올과 약물 중독에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어머니, 동네와 학교의 폭력적 분위기로 인해 고통을 겪었다.

열아홉 살 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이후 우울증과 정신이상에 시달렸으며 오랫동안 약물과 알코올 중독자로 지냈다.

그런 그를 구해낸 건 글쓰기와 힙합이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이 경험한 가난과 학대, 폭력, 중독, 고통, 나아가 이를 둘러싼 사회 상황과 자신에게 영향을 끼친 사람들, 가난과 계급을 둘러싼 편견, 자신이 세상에 가졌던 믿음과 좌·우파의 입장, '빈곤 산업'에 이르기까지 가난을 구성하는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 뜯어보고 분석하며 나름의 해법을 제시한다.

돌베개. 354쪽. 1만6천500원.
▲ 원본 없는 판타지 = 오혜진 등 14명 지음.
2018년 '페미니스트 시각으로 읽는 한국 현대문화사' 강좌에서 이뤄진 10회의 강연을 재구성한 글과 새롭게 더해진 4편의 글을 한데 엮었다. 이 강좌는 2015년 '메갈리아 현상', 2016년 '강남역 여성 혐오 살인사건', 2017년 '미투 운동' 등을 거치면서 더 정교하고 정치적으로 올바르게 페미니스트 노선을 업데이트하기 위해 기획됐다.

책에 실린 14편의 글들은 영화, 미술, 대중잡지, 대중가요, 로맨스 소설, 순정만화, TV 드라마, 동인지, 소셜미디어, 팟캐스트, TV 예능, 디지털 게임 등 온갖 장르와 매체에 걸쳐 당대의 문화적 서사가 페미니즘 문화비평에 어떤 '말 걸기'를 시도하는지, 때로 모순되고 상충했던 주체들의 욕망은 각자의 시대적 입지 조건 속에서 어떻게 진화하거나 탈화했는지를 들여다본다.

1부는 그간 한국 근대사에서 충분히 음미된 적이 없고 여전히 해독 불가능한 것으로 남아있는 '범상하고도 희귀한 정황들'을 조명한다.

1939년 '동성연애' 살인사건과 식민지 말기의 문학과 영화의 에스닉 크로스 드레싱, 1960~70년대 유흥업과 냉전 시대의 성문화 등이다.

2부는 각종 정치적·문화적 경계가 유연해지던 민주화·자유화 시대를 다룬다.

순정만화, 막장 드라마, 소셜미디어와 디지털 게임 등에서 성별·성 정체성·성적 선호와 관련된 '정상성의 범주가 어떻게 재구성되거나 흐트러지는지를 규명한다.

후마니타스. 600쪽. 2만5천원,
▲ 여자는 왜 자신의 성공을 우연이라 말할까 = 밸러리 영 지음, 강성희 옮김.
'가면 증후군(Imposter Syndrome)' 전문가인 저자가 여성들이 자기 불신을 극복하고 자신의 능력과 재능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을 안내한다.

가면 증후군이란 자신의 능력이나 성취에 대해 의심하고 그것이 '사기'로 드러날 것이라는 불안을 갖는 심리 현상을 의미한다.

저자 자신이 가면 증후군 때문에 학문적·직업적 꿈을 포기할 뻔했다.

석사과정 4년 차이던 1982년 논문을 쓰지 못한 채 계속 미루고만 있던 상황에서 '유능한 여성들에게 나타나는 가면 현상'이라는 논문을 읽고서는 바로 자신의 이야기라고 느꼈고 주변에 비슷한 생각을 하는 여성이 아주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저자는 그 후 본격적으로 이 주제를 탐구해 매사추세츠대학교에서 교육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수많은 대학과 기업체에서 강연하며 가면 증후군 극복의 전도사 역할을 해내고 있다.

가면 증후군은 남성도 겪을 수 있지만, 여성들을 더 많이 억압하기 때문에 책은 주로 여성의 사례를 다룬다.

저자에 따르면 가면 증후군은 완벽주의자 유형, 타고난 천재 유형, 전문가 유형, 엄격한 개인주의자 유형 슈퍼우먼 유형 등 형성된 이유나 현재 처해 있는 상황에 따라 여러 형태로 나타난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어떤 유형에 속하는지, 일과 성공을 대하는 태도에는 어떤 형태의 보호 기제가 숨어있는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

책은 여성들이 자신의 심리 상태를 좀 더 객관적으로 판단하도록 돕는 질문들을 곳곳에 수록하고 다양한 사례를 통해 각 유형의 사고 패턴을 설명해 각자가 자신의 행동에 쉽게 대입해 볼 수 있도록 했다. 갈매나무. 336쪽. 1만6천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