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공부 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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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A32
권오경 < 한국공학한림원 회장 okwon@hanyang.ac.kr >눈만 뜨면 도서관으로 향하던 대학생 시절, 사서들이 낡거나 파손된 책을 수거해 버리는 날이 있었다. 그날도 도서관 앞에 폐기처분을 기다리는 책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나는 혹시 버려질 책 속에 쓸 만한 것이 있는지 한 번씩 살펴보곤 했는데, 표지가 찢겨나간 영문판 책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어느 무명작가의》라는 제목의 책이었다. ‘권위를 내세우지 않는 위대한 영향력’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에 관한 이야기였다.
영문 원서로 술술 읽어내기에는 어려운 내용이었지만 모르는 단어는 사전을 뒤져가며 밤낮없이 빠져들었다. 뼛속까지 유교 집안에서 자라 기독교에는 문외한이었던 나는 모든 권위를 내려놓고 인간을 구원한 예수의 삶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 후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고 크리스천이 됐다. 영어 실력이 일취월장한 것은 덤이었다. 내 인생의 목표를 설정하는 데 전환점이 된 그 책을 애지중지 보관하며 고민이 있거나 삶의 문제에 부닥칠 때마다 펼쳐봤다.나도 내가 경험한 것들을 나누며 살아야겠다는 성찰이 깊어질 즈음 군대에 갔다. 대학을 졸업하고 늦깎이 입대를 한 터라 군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특히 공고를 막 졸업하고 직업 군인으로 입대해 첫 소임을 받은 A하사와는 나이로는 내가 한참 위였지만 모셔야 하는 상사였고, 반대로 우리가 맡았던 군 장비 개발 업무에서는 전공자인 내가 월등하니 그가 나에게 모든 것을 물어야 하는 처지였다. 나는 그에게 전공과 관련한 내용을 아낌없이 가르쳐줬다. 그리고 학업을 계속해야 하는 이유와 그것이 그의 인생을 어떻게 바꿔놓을지에 대해 틈날 때마다 설득했다.
결국 그는 단기 하사로 제대하고 열심히 공부해 나의 대학교 후배가 됐다. 이후 연락이 끊어지고 오랜 시간이 지난 어느 날 미국의 한 식품점에서 거짓말처럼 조우했다. 대학 졸업 후 유학을 왔고, 이민자인 아내와 결혼해 댈러스에 살고 있다고 했다. 이 인연은 내가 한국으로 돌아와 교수로 재임하고, 그는 아버지의 병환으로 1년 넘게 한국에 나와 있어야 했을 때 내 연구실에서 같이 연구하는 관계로 맺어지기도 했다.
미국에서 회사에 다닐 때도 같이 일하는 기술자들에게 마치 ‘공부 전도사’처럼 학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결과적으로 베트남인 B씨는 대학원 석사를 거쳐 지금은 고국에서 교수가 돼 있고, 미국인 C씨는 나의 권유로 야간대학을 다니다가 법학전문대학원을 거쳐 변호사로 소위 잘나가는 삶을 살고 있다.
누군가의 인생에 좋은 영향력을 끼쳤다면 그것만큼 보람된 일이 또 있을까. 우연히 발견한 책에서 내 인생의 진리를 캐낸 것처럼, 사람들만 보면 공부를 권하는 나의 공부 전도사 기질이 오늘도 나의 주변 사람과 제자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