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논설실] 코로나 사태가 새삼 일깨워주는 세상의 진실들

사진=연합뉴스
두달여 지속되는 ‘코로나 참사’는 모두에게 시련과 상실감을 안기지만, 반대로 얻는 것도 있다.극단의 위기로 인해 코로나 이전에는 알지 못했고 확신하지 못했던 귀중한 사실들을 확인하고 일깨우는 계기가 됐다. 우리 안의 편견과 허상을 지우고,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는 데 필요한 안목과 지혜를 제공해 주고 있다.

◆‘무상 복지·의료’의 허상…불공정한 ‘국제 질서’코로나 사태는 유럽식 무상 의료,무상복지 서비스의 허상을 확인시켰다. ‘영국에선 병원비가 공짜’라는 등의 말을 들을 때마다 ‘부럽다’고 생각했지만 실상은 달랐다. 영국 이탈리아 스페인 등 무상 의료를 시행중인 나라의 코로나 환자 평균 치사율은 의료보험제도를 채택한 한국 독일 프랑스 스위스의 3배 수준을 오르내린다. 죽을 병이 아니면 입원에만 몇달씩 걸리곤 하는 의료인프라 부족이라는 무상의료제도의 허점이 여실히 드러났다. ‘보편적 의료 복지’로 불리는 무상 의료 시스템은 기초 질환 치료에는 유용할 수 있지만 중증 치료에는 큰 한계를 갖는다는 게 코로나 사태를 지켜보는 의료 전문가들의 일치된 평가다.무상 의료가 보편적 복지의 핵심 축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유럽식 사회민주주의의 허실을 보여주는 단면이기도 하다.

기축통화국에 압도적으로 유리한 국제경제질서도 새삼 절감하게 된다. 무제한 양적완화와 무차별 신용보강을 선언한 미국 중앙은행(Fed)은 9일에도 중소기업과 지자체를 대상으로 2조3000억달러(약 2800조원) 돈풀기 처방을 내놓았다. 유로화와 엔화를 찍어내는 EU와 일본 역시 수천조원 규모의 과감한 유동성 확대 조치로 코로나 쇼크에 대응중이다. 하지만 한국 정부와 한국은행은 동원할 통화정책이나 재정정책 여력이 거의 없는 답답한 상황이다. 취약한 주변국 통화인 원화는 발행을 함부로 늘렸다가는 환율상승과 인플레이션, 국가부채 급증이라는 부작용을 감당하기 힘들다. 외환을 4000억 달러 넘게 쌓아두고도 Fed의 달러 스왑에 매달리는게 현실이다. 비기축통화국에 원천적으로 불리하게 설계된 ‘게임의 룰’은 비애를 넘어 분노의 감정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유엔의 무능·관료주의…주목받은 아시아적 가치필요한 조치를 제때 취하지 못해 코로나 팬데믹(대유행)을 증폭시킨 세계보건기구(WHO)의 무능은 신뢰할만한 국제시스템의 부재를 입증했다. WHO의 ‘중국 감싸기’는 중립적이고 공정해야 할 유엔이 국제정치와 관료주의에 심각하게 오염됐음을 보여준다. CNN은 세계최고의 코로나 바이러스 대응국으로 대만을 꼽으면서 ‘WHO 미가입국이기 때문’이라는 역설적인 성공비결을 제시하기도했다. 중국과의 왕래와 교역이 어느 나라보다 많지만 WHO 구성원이 아닌 탓에 WHO의 부실 조언에 구애받지 않고 자체대응한 게 성공으로 이어졌다는 설명이다.

‘서구의 방식이 표준이고 우월하다’는 광범위한 편견도 되짚어보게 된다. 지금까지 코로나 전투의 승자는 아시아다. 미국 스페인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등 서구선진국이 환자수 10만명을 웃돌며 나란히 1~5위다. 아시아(중동 제외)에서는 코로나19 발원지 중국이 6위다.하지만 중국을 제외하면 1만명대 확진자가 나온 한국과,도쿄올림픽에 집착하다 방역에 소홀했던 일본 정도만 심각한 상황이다. 대부분의 아시아나라들은 초기에 사태를 진압했다. 몽고 라오스 미얀마는 확진자가 100명 이하이고, 베트남 방글라데시 홍콩도 1000명을 하회한다. 전세계를 덮친 동일한 재앙에 대해 아시아의 대응이 가장 돋보인 점은 아시아적 가치의 유효성과 시스템의 경쟁력을 보여준다.

◆‘중국·정치과잉·선동’이라는 위험의 발견코로나는 한국의 생존을 위협하는 존재에 대한 각성도 안겨준다. 우선 놀라게 되는 것은 이웃 중국의 대책없는 후진성이다. 저급한 위생,불투명한 정보공개 및 언론통제,주변국 무시 행태로 중국은 ‘글로벌 민폐국’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도 사과 한마디 없이 “중국의 강력한 방역이 세계의 안전을 위한 시간을 벌어줬다”며 큰 소리다. 이런 것도 소위 ‘대륙의 스케일’인지 적반하장의 정도가 상상초월이다.

선전·선동이 취약한 우리 내부의 문제도 직시하게 된다. 한국은 인구 1백만명당 확진자가 203명으로 중국(57명)의 4배에 달한다. 환자수로 보면 아시아에서 압도적 1위다. 전문가의 조언을 무시하고 정치적 접근으로 일관한 결과일 것이다. 다행히 축적된 우수한 의료인프라와 사명감에 넘치는 의료진의 고군분투로 최악은 막았다. 그런데도 정부는 정책 실패로 비극을 맞은 국민을 위로하기보다 친 정부 매체를 앞세워 자화자찬에 집착하는 모습이다.

정치의 추락은 끝이 없다는 점에도 놀라게 된다. 두 어달전 처음 제기됐을때 실현가능성 낮은 이상론 정도로 취급받던 ‘전국민 재난기본소득 1000만원 지급’이 어느새 현실이 됐다. 나라보다 당파의 이익을 앞세우는 정치의 타락이 아닐 수 없다. 코로나 참사가 세상을 정확히 보는 창이 되고 있다는 역설적 사실은 코로나 이후를 비관적으로만 볼 필요가 없다는 점도 일깨워준다.

백광엽 논설위원 kecor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