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코노미] 저금리에도 못 웃는 둔촌주공…금감원 찾아간 사연은

3년 전 이주비 등 3조원 年 4%대 조달
이자만 월 100억…"가산금리 낮춰달라"
철거 공사를 끝내고 재건축 착공을 준비하고 있는 서울 둔촌동 둔촌주공아파트. 조합 제공
초저금리 시대에 접어들면서 정비사업조합들의 속내가 복잡해지고 있다. 수년 전 한참 높은 수준의 금리로 이주비 등을 조달했기 때문이다. 사업이 막판 지연돼 수백억대의 이자비용을 허공에 뿌리고 있는 조합들은 속이 더욱 쓰리다. 급기야 금융당국에 이주비 금리 인하를 요청하는 조합도 등장했다.

◆바람 잘 날 없는 둔촌주공10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서울 둔촌동 둔촌주공재건축조합은 최근 금융감독원에 이주비 대출 가산금리 인하를 요청했다. 조합은 2017년 이주를 진행하면서 평균 4%대의 금리로 이주비를 조달했다. 일부는 6개월마다 변동금리가 적용되지만 2.28%의 가산금리는 고정값이다. 최찬성 둔촌주공 조합장은 “은행들에 경기 상황을 반영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협의가 원만하지 않아 금감원에 민원을 냈다”며 “각 은행에 협조공문을 보내겠다는 답을 들었다”고 말했다.

이주비란 재건축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주민들이 살 집을 얻을 수 있도록 조합이 금융권에서 융통하는 대출을 말한다. 은행은 조합원들의 토지와 시공사의 보증을 담보로 돈을 빌려준다. 조합원 숫자가 6100명을 넘는 둔촌주공은 이렇게 조달한 비용이 2조원이다. 여기에 사업비 대출까지 더하면 2조7000억원이다. 한 달에 내야 하는 이자만 100억원에 가까운 것으로 알려졌다.

재건축조합이 금융당국에 직접 대출금리 인하를 요청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시중금리가 갈수록 낮아지자 조합원들이 상대적인 손해를 느꼈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한 대형건설사 도시정비사업팀 관계자는 “저금리 시대의 헤프닝에 가깝다”며 “사업성이 좋은 강남권 재건축의 경우 요즘은 2% 중반대의 금리로 이주비대출을 실행한다”고 말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둔촌주공은 가산금리가 주변 단지보다 1%포인트 이상 높다”며 “대출 규모가 큰 데다 여러 건설사가 함께 짓는 컨소시엄 형태이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조합은 3년 전 시중은행 6곳에서 이주비를 끌어왔다. 당시 정부가 가계부채를 관리하겠다며 집단대출을 축소해 은행 한 곳당 가능한 대출금액이 쪼그라들었기 때문이다. 둔촌주공 조합 관계자는 “아직도 갚아야 이주비가 1조4000억원가량”이라며 “과거엔 녹록지 않은 여건에서 조단위 자금은 끌어와 조합원들의 박수를 받았지만 이젠 고금리에 대한 민원이 쇄도하고 있다”고 전했다.
철거 공사를 끝내고 재건축 착공을 준비하고 있는 서울 둔촌동 둔촌주공아파트. 조합 제공
◆이주기간만 7년…분담금 폭탄

은행이 가산금리를 낮춰줄 의무는 없다. 조합과 이미 약정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합이 계란으로 바위치기식 협상에 나서려는 건 앞으로 사업비 손실이 더 커질 우려가 있어서다.이주비대출에 대한 이자는 우선 조합이 부담하지만 재건축이 끝나면 조합원들의 추가분담금으로 돌아온다. 사업이 막판 정체돼 이주를 나간 기간이 길어질 경우 분담금도 그만큼 늘어나는 구조다. 둔촌주공 조합원들의 이주 기간은 곧 3년을 채운다. 중도에 석면 논란으로 철거공사가 1년 넘게 멈췄던 영향이다. 그러나 당장 새 아파트를 착공하더라도 3년6개월이 더 걸린다. 1만2000가구를 짓는 대공사인 탓이다. 사실상 7년가량의 대출이자가 분담금으로 돌아오는 셈이다.

설상가상으로 일반분양 수입도 감소할 위기다. 분양가 산정을 놓고 주택도시보증공사(HUG)와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어서다. 조합은 관리처분계획대로 3.3㎡당 평균 3550만원의 일반분양가를 받아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HUG는 이를 수용할 수 없다고 버티고 있다. 최찬성 조합장은 “지난달 신청한 분양보증에 대해 HUG는 아직까지 어떠한 공식 입장도 밝히지 않은 상태”라며 “원하는 분양가가 책정되지 않는다면 후분양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건설업계에서는 둔촌주공의 후분양 가능성을 높지 않게 보고 있다. 일반분양 수입으로 충당해야 할 공사비를 외부에서 다시 조달해야 하는 데다 이에 대한 이자비용이 분양가에 반영되면 가격경쟁력을 잃을 수도 있어서다. 실물경제가 위축되고 있어 후분양 시점의 주택경기가 좋으리란 보장도 없다.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후분양을 할 경우 가격 통제를 피하기 위해 통상 HUG가 아닌 건설사 연대보증을 선택한다”며 “시공에 참여한 4곳의 건설사가 불확실한 후분양을 위해 수조원대의 우발채무를 안고 연대보증을 설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전형진 기자 withmol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