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말의 묘미와 의미

이광복 < 소설가·한국문인협회 이사장 fran604@naver.com >
언변이 뛰어난 사람은 때와 장소에 따라 담론의 화두를 잘 선택한다. 사리분별이 명료하고 박학다식해 풍부한 어휘를 능수능란하게 구사한다. 말을 받아 적으면 그대로 문장이 된다. 말이 진실하고 분명할 때 인격도 높아진다. 특히 차분하고 절제된 언설(言說)이야말로 그 어떤 웅변보다 설득력이 높다. 그렇다면 무엇보다 머릿속에 많은 낱말을 기억해 놓고 그때그때 꼭 필요한 말만 정확히 골라 쓰는 것이 상책이라고 하겠다.

한편 낱말에는 저마다 그 나름의 색깔과 감칠맛과 깊은 뜻이 있다. 예컨대 ‘좌(左=왼쪽)’와 ‘우(右=오른쪽)’만 해도 그렇다. ‘좌’와 ‘우’는 본질적으로 방위를 가리키는 말이지만 좀 더 심층적으로 살펴보면 그 두 글자 속에 이념의 색깔이 내재돼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좌파(좌익)의 ‘좌’는 진보, 우파(우익)의 ‘우’는 보수의 이념이다. 그런가 하면 ‘좌’와 ‘우’에는 서열의 개념이 있다. 왕조시대의 삼정승 서열은 영의정 다음으로 좌의정, 우의정 순이었다. 즉, 단순한 순번이 아니라 ‘좌’와 ‘우’로 서열을 매겼다.

현대 의전(儀典)에서도 왼쪽이 오른쪽보다 우선이다. 기(旗)를 게양할 때 대중이 바라보는 위치에서 왼쪽에 국기(國旗)를, 오른쪽에 사기(社旗)를 올린다. 그리고 교실 정면 왼쪽에 교훈(校訓)을, 오른쪽에 급훈(級訓)을 게시하는 것은 상식 중의 상식이다.

회장과 사장과 부사장이 회동할 경우 회장을 중심으로 왼쪽에 사장이, 오른쪽에 부사장이 앉는다. 이 기본 틀의 연장선상에서 전무와 상무와 이사와 부장과 또 다른 구성원이 직급에 따라 좌우로 상호 교차하면서 차례차례 자리를 정한다. 학생과 군인 등 군중이 ‘좌우로 나란히’ 도열할 때도 그 기준은 통상 좌측 첫 번째 줄이다.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말 또한 예외가 아니다. 좌고우면(左顧右眄), 좌우기거(左右起居), 좌우상칭(左右相稱), 좌우지간(左右之間), 좌우협공(左右挾攻), 좌원우응(左援右應), 좌지우지(左之右之), 좌청룡우백호(左靑龍右白虎), 좌충우돌(左衝右突) 등 항상 ‘좌’가 ‘우’보다 앞에 나온다.

그런데 특이한 예외가 있다. 우왕좌왕(右往左往)이 그것이다. 이 말에는 ‘좌’와 ‘우’의 자순(字順)이 뒤바뀌어 있다. 우왕좌왕이란 ‘오른쪽으로 갔다 왼쪽으로 갔다 하며 종잡지 못함’ 또는 ‘사방(四方)으로 왔다 갔다 함’을 일컫는다.

좌우의 수순이 뒤바뀌고 헝클어졌으니 문자 그대로 갈팡질팡 뒤죽박죽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말을 기분 내키는 대로 아무렇게나 씨부렁거릴 일이 아니다. 무슨 낱말이든 잘 음미하면 그 안에 담긴 독특한 묘미와 심오한 의미까지도 느낄 수 있어 더욱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