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안펀드 가동에도 회사채 시장 '한파

한화솔루션 청약 미달
한화그룹 주력 계열사인 한화솔루션이 회사채 사전 청약에서 목표 물량의 40%도 채우지 못했다. 이 회사의 신용등급 전망이 최근 ‘부정적’으로 떨어지자 기관투자가들이 몸을 사린 탓이다. 채권시장안정펀드가 본격 가동을 시작했지만 회사채 시장은 여전히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는 지적이다.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13일 한화솔루션이 2100억원어치 회사채(3년 만기) 발행을 위해 기관을 상대로 진행한 수요예측에서 목표에 크게 못 미치는 800억원의 매수 주문만 들어왔다. 발행사가 기대했던 채권시장안정펀드 자금이 들어오지 않아 기관들도 선뜻 참여하지 못했다. 한화솔루션의 신용도는 채권시장안정펀드가 투자할 수 있는 최저 수준(AA-)이지만 이달 초 신용평가사들이 장기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낮춘 것이 수요에 영향을 미쳤다. 채권시장안정펀드가 한화솔루션 회사채를 사들였다가 몇 개월 뒤 등급이 하향 조정될 경우 채권가격 하락에 따른 평가손실을 피할 수 없다.한화솔루션은 케미칼 큐셀 첨단소재 등 한화의 3개 계열사가 통합해 올해 새롭게 출범한 회사다. 투자자들은 화학과 태양광, 소재 등 한화솔루션의 영업환경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영향으로 크게 나빠지고 있는 점을 우려했다. 국내 증권사들이 추정한 한화솔루션의 올해 1분기 영업이익 평균치는 전년 동기 대비 7.7% 줄어든 907억원이다.

신용평가사들은 한화솔루션의 수익성 악화가 재무적 부담으로 이어질 것으로 판단하고 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매겼다. 채권시장안정펀드 운용사인 삼성자산운용과 한국투자신탁운용 역시 이런 상황에 부담을 느끼고 사전청약에 불참한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칠성 회사채엔 두 배 몰려…신용도 따라 '부익부 빈익빈' 심화

그나마 AA 이상 우량등급 기업의 자금 사정은 나은 편이다. 1500억원 규모 회사채 발행을 목표로 이날 수요예측에 참여한 롯데칠성(등급 AA)은 3200억원의 수요를 확보했다. 산업은행이 일찌감치 인수단으로 참여해 500억원어치를 총액인수한 데 이어 이날 수요예측에서 채권안정펀드 자금 800억원이 추가로 들어왔다. 창사 이후 첫 회사채 발행에 나선 현대오트론도 모집액(500억원)의 세 배에 가까운 1430억원의 매수 주문을 받는 데 성공했다. 현대오트론은 신용등급이 A여서 채안펀드 대상에는 들지 않지만 자력으로 기관 투자를 이끌어냈다.시장 참여자들은 채안펀드와 산업은행 등의 가세로 기업 자금시장이 지난달 말의 경색 수준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지만 긴장감은 여전하다고 진단했다. 중·저 신용등급의 기업은 자금 지원에서 배제되면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투자은행(IB)업계는 특히 한화솔루션 신용등급이 채안펀드의 지원 대상에 포함됨에도 향후 전망이 부정적이라는 이유로 청약에서 빠진 점을 주목하고 있다. 채안펀드의 지원사격이 기대만큼 충분치 않기 때문이다. 채안펀드 운용사들은 채권 매입가격도 시장가격보다 낮게 제시하고 있다. 지난 6일 롯데푸드 수요예측에서 채안펀드 측은 민간 채권평가사의 시가평가보다 0.2%포인트 높은 금리(낮은 가격)로 매수주문을 넣었다. 이날 롯데칠성 수요예측에서도 채안펀드 운용사들은 0.15~0.36%포인트 높게 제시하며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이 때문에 정부의 채권시장 안정화 방안이 시행된 이후에도 기업 신용위험은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날 3년 만기 AA- 등급 회사채 평균금리는 전날 대비 0.031%포인트 오른 연 2.120%를 기록해 같은 만기의 국고채(연 0.996%)와의 금리 격차를 1.124%포인트까지 벌렸다. 2010년 3월 4일(연 1.13%포인트) 후 10년1개월 만에 최대 기록을 새로 썼다. IB업계 관계자는 “정부 지원은 우량기업 위주로 이뤄지고 있다”며 “비우량 기업의 회사채 시장엔 여전히 찬바람이 불고 있다”고 말했다.

김진성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