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전전하다 구급차서 10시간…日, 코로나 아닌 '규제'와 싸운다

현장에서
16일 일본에서는 병원 20곳을 전전하다 구급차를 탄 지 10시간 만에 자택에서 40km 떨어진 병원에 겨우 입원한 80대 환자의 사례가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이 환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감염자가 아니었는데도 단층촬영(CT)에서 의심증상이 발견되자 곧바로 퇴원처리됐다. 110곳의 병원에서 입원을 거부당한 환자와 39도 이상의 고열과 극심한 기침이 이틀째 계속되는데도 20대라는 이유로 유전자(PCR) 검사를 거부당한 사례도 보도됐다.

도쿄도청에 따르면 5곳 이상의 병원에서 입원을 거부 당하거나 20분 넘게 구급차를 탄 채 받아줄 병원을 찾아다닌 사례가 3월 한 달 동안만 931건이었다. 대부분 코로나19 의심환자들이었다.환자들을 거부한 이유는 하나같이 전용병실과 의료기기, 인력의 부족이었다. 병원의 해명에 일본인들이 분통을 터뜨리는 건 지난 1월 처음 코로나19 환자가 발생한 이래 일본 정부가 3개월 내내 '의료체제 준비'를 강조해왔기 때문이다.

코로나19 검사수를 의도적으로 줄여 환자수를 축소한다는 국제적인 비난에 시달릴 때도, 일본 국민의 80%가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긴급사태선언을 '너무 늦었다'고 평가할 때도 일본 정부의 대응은 "병상과 의료시설을 충분히 마련해 의료체제 붕괴를 막기 위한 조치"였다. 그때마다 내세운 게 집중치료실(ICU) 2~3배 확보, 마스크와 인공호흡기 대량 증산, PCR 검사수 2만건 확대 등이었다.

의료체제 붕괴로 사망자가 급증하는 미국과 이탈리아의 사례를 본 만큼 준비할 의지도, 시간도 없지 않았다. 그런데도 일본 전역의 ICU 병실은 5709실, 인공호흡기는 2만4000여대, 1일 PCR 검사수는 6000여건으로 3개월 전과 변한 게 없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중증환자가 일본 정부의 추산대로 최대 7555명까지 늘어나면 전국 47개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43곳에서 ICU 부족사태가 일어날 것이라고 이날 보도했다. 현지 의료진들도 인공호흡기와 인공심폐장치(ECMO)와 같은 의료장비는 물론 마스크, 보호의료복 등 기본적인 보호장비조차 부족하다고 하소연한다. 의사가 부족해 견습의사들을 무급으로 투입할 정도로 의료체계 붕괴가 임박했다는 의료진의 경고가 줄을 잇는다.

그런데도 일본의 의료체제가 꿈쩍을 않는 건 촘촘한 규제에 발목을 잡혀있기 때문이다. 인공호흡기 증산은 의약품의료기기법이 가로막고 있다. 이 법에 따르면 신규사업자가 인공호흡기를 생산하려면 제품을 인가받는데만 10개월 이상이 걸린다. 제조허가는 둘째치고 공장설계까지 심사를 받아야 하는 등 심사 항목도 10가지가 넘는다.

일본 자동차협회가 "대량생산 노하우와 기술 전수에 적극 협력하겠다"고 밝히면서도 직접 인공호홉기 생산에 뛰어들기는 꺼려하는 이유다. 규제가 약한 인도에서 인공호흡기 생산을 시작한 스즈키조차 일본내 생산은 부정적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3월 비상시에는 군사물자의 증산을 지시할 수 있도록 한국전쟁때 제정한 국방생산법을 발동한 것과 대조적이다. 이 법으로 인해 제너럴모터스(GM) 등은 6월부터 인공호흡기 생산체제에 들어간다. 유럽연합(EU)도 다음달 실시할 예정이던 의료기기 규제강화정책을 1년 연기해 일반 기업이 의료기기를 생산할 수 있도록 했다.

정부에 전문적인 의료지식을 조언해야 할 의료자문기구는 도리어 규제의 벽을 높이고 있다. 일본 정부는 2017년 후생성 산하에 차관급인 의무기감직을 설치하고 의사면허를 가진 의료전문가만 임명할 수 있도록 했다. 정치적인 입김을 차단하고 전문성을 높이려는 조치였지만 의료전문가들로 구성된 의료자문기구가 오히려 의료계의 이익집단 역할을 하고 있다.

코로나19 치료에 효과가 있는 아비간의 승인을 지연시키고 일반 환자의 원격진료 허용을 마지막까지 반대한 곳도 후생성 의료자문기구다. 검사수를 늘리고 환자를 일반인과 분리해 감염을 막은 다른 나라와 달리 '검사수를 늘리면 증상이 경미한 환자까지 병원에 몰려 의료체계가 붕괴한다'는 해괴한 논리도 후생성 자문기구 작품이다. 오직하면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지난 11일 '아베 수상도 어쩌지 못하는 의료계의 성역'이라며 후생노동성을 비난하기도 했다.여기에 1970~1980년대 의약품 부작용 사건으로 담당과장이 유죄판결을 받은 후생성의 복지부동, 여당인 자민당에 막대한 영향력을 가진 일본의사회 등 다양한 집단이 일본 의료계의 급격한 변화를 반기지 않는다.

16일 2시 기준 일본의 코로나19 확진자수는 9434명으로 늘었다. 환자수 1만명 돌파를 눈앞에 두고도 일본은 코로나바이러스가 아니라 규제와 싸우고 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