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백신 초고속 임상 허용…의학계 "어떤 부작용 나타날지 몰라"

美이노비오 '코로나 DNA 백신'
한국서 임상1·2 동시 진행

의학계 "통상 10년 걸리는 일
성급한 임상은 위험 할수도"

글로벌 기업들 앞다퉈 백신 개발 경쟁
한국화학연구원 신종바이러스융합연구단 연구진이 생물안전등급 3등급(BSL-3) 시설에서 바이러스를 연구하고 있다. 한국화학연구원 제공
과학계와 의학계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개발에 가속 페달을 밟고 있는 정부의 행보에 우려를 제기했다. 국립보건연구원이 지난 16일 한 미국 기업(이노비오파마슈티컬)의 DNA 백신을 도입해 임상 1·2상을 오는 6월 한꺼번에 진행하겠다고 밝히자 나온 반응이다. 이번 임상에 사용하는 핵산 백신(DNA·RNA 백신)은 아직 안전성과 유효성이 검증되지 않은 신기술이다. 치료제와 달리 백신 개발엔 ‘최소 10년’이 걸린다는 게 과학·의학계의 중론이다. 박혜숙 이화여대 의대 교수는 17일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와 대한민국의학한림원이 연 포럼에서 “과학적 설계와 평가 없이 (백신 개발이) 이뤄지면 더 큰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며 “실용화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국민을 이해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는 이날 코로나19 치료제와 백신 개발을 집중 지원하는 ‘민관합동 범정부 지원단’을 구성했다. 실무추진지원단장은 질본의 권준욱 국립보건연구원장과 용홍택 과기정통부 연구개발정책실장이 공동으로 맡는다.
DNA·RNA 백신은 미지의 영역

바이러스 일부(항원)를 몸 안에 주입해 면역력을 키우는 백신은 크게 네 가지로 나뉜다. 사(死)백신으로도 불리는 불활화백신은 바이러스를 포르말린으로 죽여 독성을 완전히 없애고 ‘껍데기 단백질’만 몸에 넣는다. 제조는 간편하나 효능(면역력 증강)이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백신 투입 후 몸 안에 ‘바이러스 살상 정규부대’인 T세포는 안 생기고 중화항체만 생성되기 때문이다. 충남대 수의대 서상희 교수팀이 지난달 개발했다고 밝힌 코로나19 백신 항원이 불활화 방식에 속한다.

약독화 백신은 바이러스를 계대배양(배양지를 바꿔 반복 배양)하면서 독성을 줄여 체내에 넣는 기술을 이용한다. T세포와 중화항체가 동시에 생겨 효과가 좋다. 황열, 독감 백신 등을 이렇게 제조한다. 하지만 독성이 언제든 발현될 수 있어 오랜 기간에 걸쳐 안전성을 검증해야 한다. 단, 코로나 등 감염력이 큰 신종 바이러스는 약독화 기술로 백신을 제조할 수 없다.단백질 백신은 바이러스의 침투 경로인 돌기를 유전자 재조합으로 만들어 체내에 주입한다. SK바이오사이언스, 셀트리온 등의 주력 분야다. T세포와 중화항체 생성이 가능한 데다 바이러스 독성이 살아날 가능성이 없다. 그러나 역시 부작용으로 인한 사망 가능성이 상존한다. 항체가 너무 많이 생겨나는 과잉항체반응(ADE) 때문이다. 글로벌 제약사인 사노피가 단백질 백신 기술을 이용해 20여 년에 걸쳐 개발한 뎅기열 백신 ‘뎅그박시아’도 이 부작용으로 문제가 됐다.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 국가의 대규모 임상 과정에서 70명 넘게 사망자가 발생했다.

핵산 백신은 더 나아가 바이러스 돌기 단백질을 만드는 DNA(데옥시리보핵산) 또는 RNA(리보핵산)를 체내에 넣는다. 하지만 과잉항체반응을 비롯한 어떤 부작용이 나타날지 예측하기 어렵다. 아직 정식 출시된 제품도 없다.

성급한 임상 착수는 위험보건연구원이 6월 임상 1·2상을 시작하겠다고 밝힌 미국 이노비오의 INO-4800이 DNA백신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 돌기인 S(스파이크)단백질을 체내에서 생성할 수 있는 DNA를 암호화해 체내에 주입한다. 피하지방에 넣는 일반 주사기를 사용할 수 없고, 별도의 전기충격기가 따로 필요하다.

이노비오와 함께 세계에서 임상에 가장 빨리 착수한 미국 모더나테라퓨틱스의 백신은 RNA백신이다. 역시 S단백질을 생성할 수 있는 메신저RNA를 특수 캡슐에 싸서 몸 안에 넣는다. RNA는 체내에 들어가면 분해효소(RNAase)에 의해 잘게 쪼개지기 때문에 보호하는 첨단 기술이 필요하다.

이 두 업체 외 중국 캔시노바이올로지컬, 선전 제노면역의학연구소가 아데노바이러스와 렌티바이러스를 벡터(일종의 형틀 기능)로 삼은 코로나19 백신에 대해 임상 1상에 착수했다. 아데노·렌티바이러스의 체내 투입이 쉽다는 점에 착안했다.한국화학연구원 신종바이러스융합연구단 관계자는 “DNA와 RNA는 몸 안에서 어떻게 변할지 모르기 때문에 10~20년을 두고 안전성을 천천히 검증해야 한다”며 “백신은 치료제와 비교해 개발 과정의 호흡이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성급한 임상 착수는 굉장히 위험하다”고 우려했다. 이 관계자는 또 “미국의 임상 기준은 한국과 달리 입학(진입)이 많이 느슨하고 졸업(신약 허가)이 엄격한 만큼 (이노비오의) 국내 임상 착수가 적절한지도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미 모더나는 바이러스 서열 분석 2개월 만에 임상을 시작했다.

세계보건기구(WHO)와 과학 학술지 ‘네이처 리뷰’에 따르면 16일 기준 세계 코로나19 백신 후보군은 115개다. 후보물질 탐색 단계가 92개, 임상 전 단계가 18개, 임상 단계가 모더나 이노비오 등 5개다. 백신은 후보물질 탐색-최적화-동물실험(전임상)-임상 1·2·3·4상을 거쳐 신약 허가를 받는다. 임상 1상은 건강한 사람을 대상으로 안전성과 약동학적 특성을 관찰한다. 이어 2상에서 효능과 최적 투여 용량, 부작용을 확인한다. 3상과 4상에선 대규모 환자를 대상으로 효능과 안전성을 본다. 신약 허가 이후에도 부작용 추적 단계를 계속 거쳐야 한다. 국내에선 SK바이오사이언스 녹십자 보령바이오파마 제넥신 연세대 가톨릭대 지플러스생명과학 한국화학연구원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등 10곳이 가장 초기 단계인 ‘후보물질 탐색’ 중이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