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상봉 '항아리'·이우환 '관계항'…50억대 봄 세일

서울옥션, 부산서 대규모 경매

문신·장욱진·이세득·박득순
근현대 거장 대표작 등 115점
조각품 '합일' '모자' '여인' 눈길
오는 29일 ‘2020 서울옥션 부산 세일’에 출품되는 도상봉의 1969년작 ‘항아리’.
하늘을 향한 앙련(仰蓮)의 좌대 위에 바르게 선 채 시무외인(施無畏印)과 여원인(與願印)의 수인(手印)을 하고 있는 보살상. 시무외인은 중생의 두려움과 근심을 없애 준다는 뜻이고, 여원인은 중생이 원하는 바를 이루게 한다는 뜻이니 그게 바로 극락 아닐까. 갸름한 얼굴, 뚜렷한 이목구비에 지그시 눈을 감은 보살의 얼굴에 은은한 미소가 피어난다.

평안남도 덕원군 덕산면 원오리의 고구려 절터에서 1937년 발굴된 ‘원오리사지 소조보살입상’이다. 같은 형태의 불상이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돼 있어 동일한 거푸집을 사용해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고구려 불상은 수가 많지 않은 데다 연화대좌 모서리 일부가 유실된 걸 빼면 거의 온전한 형태의 6세기 소조불이라는 점에서 귀중한 유물로 평가된다.

서울옥션이 오는 29일 부산 해운대 더베이101에서 열리는 ‘2020 서울옥션 부산 세일’에서 원오리사지 소조보살입상을 비롯한 고구려시대부터 조선 후기까지의 다양한 불교미술품들을 선보인다. 부처님오신날(30일)을 하루 앞두고 열리는 경매라 불교미술 섹션을 마련했다.

경매 추정가 4억~5억원에 나온 ‘묘법연화경’은 고려시대 사경변상도 가운데 완성도가 매우 높은 수작으로 손꼽힌다. 금은니 표지와 백지금니변상도를 포함하고 있다. 불교의식에 사용된 소조보살좌상 두 점도 경매에 나왔다. 높이가 각각 52㎝와 32㎝인 두 소조불상은 조선 초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양식이 특이하고 조형적으로 수려하며, 소조불 중에서 드물게 완형이라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고 있다. 추정가는 1억5000만~3억원.조선 후기 불화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지장시왕도’, 선묘불화인 ‘은선묘아미타군도’도 출품됐다.

서울옥션이 매년 한 차례씩 개최하는 ‘부산 세일’은 부산 지역에서 열리는 유일한 미술품 경매로 주목받아왔다. 올해 경매에는 불교미술품을 포함해 한국 근현대 미술품과 고미술품, 해외 미술품 등 115점, 약 50억원어치가 출품된다.

한국 근대미술 거장들의 작품도 대거 선보인다. 고전적 사실주의와 한국적 아카데미즘을 확립한 것으로 평가받는 도상봉(1902~1977)은 조선백자에 대한 남다른 애정으로 백자와 그 안에 담긴 꽃을 많이 그렸다. 이번 경매에는 그의 1969년작 ‘항아리’가 추정가 3억~5억원에 나왔다. 향토적 정서를 바탕으로 동서양을 넘나드는 독창적 작품세계를 확립한 장욱진의 화풍이 잘 드러난 1982년작 ‘거꾸로 본 세상’(추정가 7000만~1억2000만원)도 만날 수 있다.힘 있는 붓 터치로 서정적인 추상계열의 작품을 선보였던 이세득(1921~2001)의 작품세계가 잘 드러난 1958년작 ‘하오의 테라스’와 1986년작 ‘심상’, 사실적인 묘사와 서정적인 표현으로 초상화와 풍경화를 많이 그린 박득순(1910~1990)의 1964년작 ‘해운대 해수욕장 풍경’도 새 주인을 찾는다.

조각 거장들의 작품도 눈에 띈다. 추상조각의 거장이자 세계적인 조각가로 손꼽히는 문신(1923~1995)은 일본 도쿄에서 서양화를 공부하고 추상회화를 그리다 프랑스 파리에서 활동한 1960년대부터 추상적이면서 스케일이 큰 조각 작업에 열중했다. 이번 경매에는 검고 단단한 흑단을 소재로 만든 1982년작 ‘합일’이 추정가 4500만~7000만원에 나왔다.

인간과 자연을 소재로 독자적인 세계를 일군 원로조각가 전뢰진은 평생 돌을 소재로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을 해왔다. 소녀와 백조의 순수하고 평화로운 모습을 담은 1991년작 ‘소녀의 꿈-소녀와 백조’가 추정가 900만~1500만원에 나왔다. 유영교의 ‘모자’, 김동우의 ‘여인’과 ‘가족’ 등의 조각도 눈길을 끈다.단색화 거장 이우환의 설치 작품도 주목된다. 낯선 사물이 공간을 재배치해 ‘관계’에 주목하는 것으로, 1968년 무렵부터 시작된 설치작업 ‘관계항’은 그의 작품세계의 중요한 축을 이루고 있다. 이번 경매에는 자연물인 돌과 인공물인 철판으로 구성된 1980년대 후반 작품 ‘관계항’이 추정가 6000만~1억5000만원에 출품됐다.

경매 프리뷰는 오는 23일까지 서울옥션 강남센터에서, 25~29일에는 해운대 더베이101에서 열린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