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정책학 배우러 미국 왔지만, 이제는 미국이 대구를 배울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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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C7
기고 - 최이호 전 대구시 교육협력정책관(매사추세츠대 공공정책학 석사과정)학교가 문을 닫고 온라인 수업으로 바뀐 지 벌써 한 달째다. “코로나 플루”라며 독감 환자를 흉내 내던 미국의 대통령은 뒤늦게 국가 비상사태를 선언했으나 미국은 순식간에 지난 1일 사망자 세계 1위 국가가 되고 말았다. 미국 내 코로나19 사망자 수가 10만 명이 될 수 있다는 암울한 뉴스도 나온다. 손세정제와 마스크를 구할 수 없게 된 지 오래됐고, 냉동식품을 사기 위해서는 마트 밖까지 긴 줄을 서야 한다. 지역의 온라인 장터에는 휴지를 구하는 글들이 올라오고, 탄약 판매량이 늘어났다는 소식까지 들린다. 마치 전쟁이 난 것처럼 일상이 바뀌었다.
늘어나는 확진자와 사망자 소식에 불안과 공포가 엄습해 온다. 미국에서 처음 코로나19가 발생했을 때, 검사비용은 400만원 정도였다. 국가 비상사태 선포로 진단비용은 무료가 됐지만, 치료비는 4000여만원에 달한다.미국의 의료보험은 우리나라 같은 공적 사회보험 체계가 아니라 기본적으로 민영보험으로 운영된다. 의료보험이 없는 인구는 약 3000만 명, 인구의 10%가량이다. 병원비 걱정에 아파도 병원에 가지 않을, 가지 못할 이들이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지역사회 전파는 당연한 수순이다.
마이클 무어의 영화 ‘식코(Sicko)’에서 어느 손가락을 잘라야 할지를 선택해야 했던 한 무보험자의 이야기가 개인의 비극이었다면, 지금 이 전염병은 무보험자와 유보험자, 부자와 빈자 모두에게 해당한다. 비정한 의료 민영화의 현실은 모두에게 불행으로 남게 될 것이다. 여기서는 진단키트도, 의료병상도, 산소호흡기도 평소 돈이 안 된다는 이유로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에 곧 숨이 넘어갈 만큼의 중증 환자가 아니면 대상이 아니다. 그저 지금 발표되는 수십만 명의 확진자보다 훨씬 더 많이 바이러스가 퍼지고 있다는 사실만 짐작하고 있을 뿐이다.
지난 2월 대구에서 확진자 수가 급격히 늘어날 때, 수업을 같이 듣던 미국 친구들은 “너 대구에서 왔잖아, 가족들은 괜찮냐”고 걱정을 해줬다. 그때 대구는 중국 우한과 더불어 코로나19 집단발병지로 불편한 주목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이제 상황은 바뀌었다. 우리에게는 미국과 달리 든든한 공공보험이 있다. 이를 바탕으로 대구시와 중앙정부는 재빠르게 진단키트를 확보하고 대규모 검사를 시행할 수 있었다. 민간병원인 대구동산병원은 자발적으로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변신했고, 메디시티협의회라는 우수한 민관 협력 거버넌스는 지역 의료자원을 총결집시키는 역할을 해냈다.무엇보다 더 필요한 곳에 마스크를 양보하며, 놀라운 의지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한 시민들 덕분에 내 고향 대구는 이제 전염병을 모범적으로 관리하고 있는 도시로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혹시 마트에 남는 휴지가 있나 싶어 다시 차에 올랐다. 라디오를 켜니 친숙한 언어로 한국의 코로나19 사망률은 1%대라는 인터뷰가 들린다. 아나운서는 한국을 배워야 한다고 한다. 마스크를 요일에 따라 살 수 있고, 드라이브 스루로 검사를 받고, 격리시설에서 무료로 치료받을 수 있는 고향으로 가고 싶다. 행정학, 정책학의 원류라는 이 미국에서 나는 무엇을 배웠을까? 이제는 미국의 친구들이 선진국 대한민국에, 대구에 공공정책과 시민의 힘을 배우러 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