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로 와달라" 한 의사의 호소…'코로나 의병' 3천여명 응답했다

코로나 급한불 끈 이성구 대구시의사회 회장의 SOS

의료인들 생업 내던지고 합류
공중보건의·간호장교들도 동참
“사랑하는 의사 동료 여러분! 우리 대구의 5700명 의사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의 전투에 분연히 일어섭시다. 응급실이건, 격리병원이건 각자 코로나19 전선에서 한 명의 생명이라도 더 구하기 위해 불퇴전의 용기로 끝까지 싸웁시다. 지금 바로 선별진료소로, 대구의료원으로, 격리병원으로, 응급실로 달려와 주십시오.”

지난 2월 25일 이성구 대구시의사회장(사진)의 절박한 호소에 대구뿐만 아니라 전국의 의료진 3000여 명이 대구로 향했다. 개인병원과 종합병원의 원장과 의사들은 생업을 접고 달려왔다. 훈련도 제대로 마치지 않은 공중보건의 700여 명과 75명의 간호장교 그리고 공공병원 의사와 간호사까지 합류했다.이 회장은 21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새벽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2월 25일 새벽 쓴 글에 이렇게 많은 의료영웅이 달려올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며 “당시 대구는 생전 처음 보는 적에게 기습을 당해 크게 밀리는 느낌이었다”고 표현했다. 대구에서 첫 확진자가 나온 지 1주일이 된 시점이었다. 역사상 최고의 의료재난 사태를 당한 대구는 당시 코로나19 확진자가 1000명에 육박하고, 매일 100여 명의 환자가 쏟아졌다.

이 회장은 2월 25일 오전 대구동산병원에 도착해 가장 힘든 일을 시켜달라고 했다. 방호복을 입고 회진을 돌고 오후에 오니 전화 수십 통이 와 있었다. 그날 대구에서만 247명, 전국에서 50여 명이 봉사를 자청했다. 봉사단장을 맡은 대구시의사회 수석부회장에게 인력 배치 작업을 맡겼다. 이 회장은 “민간병원인 동산병원이 갑자기 격리병원으로 지정되다 보니 일감도 분류가 안 된 상태에서 의료진이 모였다”며 “어디에 일손이 필요한지부터 정해야 했을 정도로 급박한 상황이었다”고 회고했다.

이 회장은 의료인력 조달이 어느 정도 안정된 지난달 4일부터 생활치료센터에서 일을 도왔다. 생활치료센터가 세계 최초로 생긴 시설이다 보니 ‘무에서 유를 만드는’ 과정을 반복했다. 이 회장은 의사회로 기부된 물자를 배분하는 역할도 했다. 전투로 말하자면 전방, 후방, 보급대 등 모든 전선을 다닌 셈이다. 이 회장은 지역기업인 금복주가 보낸 소독용 알코올을 나르다 넘어져 이가 부러지고 입술이 찢어지는 사고도 겪었다.2000명 이상의 환자가 자가 대기 상태에서 불안해하던 때 의료진의 전문적인 돌봄을 받을 수 있게 한 것도 대구시의사회였다. 이 회장은 “대구시의사회 의사 170여 명이 2700여 명의 환자를 분담해 화상전화로 건강상태 변화를 점검했다”며 “이들의 전문적인 봉사로 환자들은 안심했고 많은 사망자를 예방했다. 결국 이런 노력이 세계가 부러워하는 대구형 방역모델이 됐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관군이 밀리면 언제든지 의병이 나서는 우리 민간의료의 힘이 공공의료의 공백을 메웠다”며 “전국에서 생업을 접고 달려온 의료영웅들, 대구시 의사회에 보내준 국민의 성원과 지원에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유료회원이 5700명이던 대구시의사회는 이번 일을 계기로 회원이 6000명으로 늘어났다.

대구=오경묵 기자 okmoo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