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꿈'과 '병'

이광복 < 소설가·한국문인협회 이사장 fran604@naver.com >
중학생 때 문학에 뜻을 뒀다. 그 당시 국어 영어 수학은 필수과목이었고, 과학과 사회, 예능을 아우르는 여러 과목이 있었다. 시험 때마다 국어는 거의 만점을 맞았고, 역사와 지리 등 사회 과목에서도 뒤진 적이 없었다. 국어와 사회 관련 과목을 제외한 다른 과목에는 별 흥미가 없었다.

영어와 수학, 과학에서도 얼마든지 상위권을 유지할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이들 과목은 선생님께서 내주는 숙제나 대충대충 건성으로 해결했다. 그 분야보다는 문학작품 탐독에 더 몰입했기 때문이었다. 문학이 곧 ‘꿈’이었다.고등학생 때에는 그 꿈이 숫제 지독한 ‘병’으로 전이됐다. 하루라도 문학작품을 읽지 않으면 허전하고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일종의 중독 증세였다. 특히 늦가을께 도하 각 일간지에 신춘문예 작품 공모 사고(社告)가 나올 무렵이면 온몸이 후끈후끈 달아오르곤 했다. 고3 때 신춘문예에 희곡을 응모했다. 물론 낙방이었다.

1970년 1월 고교를 졸업하자마자 우선 당장 입에 풀칠이라도 하려고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다. 가난이 원수였다. 그해 초여름 무작정 상경 이후에는 더욱 처절한 피눈물을 흘려야 했다. 살인적인 중노동보다 더 힘든 것은 객지의 냉대로 인한 모멸감이었다. 고향에서는 유년 시절부터 ‘신동’이니 ‘수재’니 ‘천재’란 칭찬을 들었고, 재학 중에는 지각이나 조퇴 한 번 하지 않은 모범생으로 정평이 나 있었건만, 서울이라는 이 도시에 들어와 소위 이렇다 할 끗발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멍텅구리’ ‘무지렁이’ 취급을 당할 때에는 천불이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비참하고 서러웠다. 한창 감수성 예민했던 그때 실의와 좌절의 문턱에서 고뇌하고 또 번민했다. 죽고 싶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청운의 꿈이 있었다. 문학은 내 삶을 지탱해주는 버팀목이자 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일러주는 구원의 이정표였다. 그 험악한 밑바닥을 헤매면서도 인생 역전의 장쾌한 드라마를 꿈꾸며 해마다 각종 문예작품 현상 공모에 도전했다. 번번이 ‘낙동강 오리알’이었다. 그래도 최종심까지 올라 당선작과 자웅을 겨루며 심사평에 잘 언급됐다는 사실만으로 작은 위안을 삼았다.

그러다가 1973년 문화공보부(문화체육관광부의 전신) 문예작품 현상모집 장막희곡 입선, 1974년 ‘신동아’ 논픽션 현상모집 당선, 1976년 ‘현대문학’ 소설 초회추천, 1977년 ‘현대문학’ 소설 완료추천, 1979년 ‘월간독서’ 장편소설 현상모집 당선을 거치며 문단에 발을 들여놓은 이래 오직 한길 문인의 길을 걸어왔다. 결국 ‘꿈’과 ‘병’이 나를 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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