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언어와 인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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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A32
이광복 < 소설가·한국문인협회 이사장 fran604@naver.com >화법(話法) 중에는 반어법(反語法)과 역설법(逆說法)이 있다. 가령 미운 사람에게 “야, 너 참 잘났다”고 비꼰다든지, 예쁜 아기에게 “넌 어쩌면 이렇게 밉냐?”고 꿀밤을 먹인다든지, 동작이 느린 사람에게 “넌 어쩌면 그렇게 빨라?” 하고 비아냥거리는 사례가 여기에 해당한다. 뭔가 일을 저지른 사람에게 “아주 잘했어” 하고 꾸짖는 어투 등, 이런 반어의 경우 진술 자체에는 모순이 없고 겉으로 표현한 말과 그 속에 담긴 뜻이 서로 반대되는 것이 특징이다.
역설은 약간 개념이 다르다. ‘불행 중 다행’ ‘즐거운 비명’ ‘찻잔 속의 태풍’ ‘소리 없는 아우성’ ‘차가운 여름’ ‘뜨거운 겨울’ ‘찬란한 슬픔’ ‘상처뿐인 영광’ ‘패배한 승리’ ‘작은 거인(巨人)’ 등 앞말과 뒷말이 상호 모순 또는 이율배반적으로 결합해 있다. 이렇듯 역설의 구조가 반어와 비슷하므로 학술적으로는 역설법을 반어법에 포함하기도 한다. 어쨌거나 반어와 역설은 그저 밋밋한 표현보다 의미 전달을 좀 더 강하게 도와주는 효과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표현은 정상적인 진실을 비정상적으로 슬쩍 비틀거나 살짝 뒤집거나 슬슬 꼬는 변형된 화법이다. 이런 표현들은 대체로 문학작품에서 자주 접할 수 있다.누구나 다 알다시피 문학은 기본적으로 언어예술이다. 문인이 시와 소설 등 문학작품을 창작할 때는 무궁무진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반어, 역설, 상징, 비유 등 모든 수사법(修辭法)을 총동원하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문인을 ‘언어의 연금술사(鍊金術師)’라 하고, 문학작품을 일컬어 ‘언어의 보고(寶庫)’라 한다. 그만큼 문학작품 속에는 이제껏 다른 사람들이 쓰지 않은 신선한 언어와 기상천외한 표현이 넘쳐난다.
그렇다고 문학적 수사를 아무데나 쓰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학술논문, 검찰의 공소장, 법원의 판결문, 행정관서의 공문서는 상상이나 허구가 아닌 사실(事實)을 생명으로 한다. 따라서 아주 특수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개념이 모호하거나 추상적인 표현들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런 수사법을 잘못 쓰면 도리어 진실과는 거리가 멀어져 사실의 왜곡이나 해석의 오류를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일상생활에서도 예외일 수는 없다. 때와 장소에 딱 걸맞은 화법을 구사해야 한다. 말이라고 해서 다 같은 말이 아니다. 말이란 ‘아’ 다르고 ‘어’가 다르다. 모름지기 인격이 높은 사람은 점잖은 말을 쓰고, 점잖은 말을 쓰는 사람은 그로써 인격이 한층 더 높아지게 마련이다. 특히 반어를 쓸 때는 표현 자체의 비정상적인 요소까지 참작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지 않을까 더욱 조심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