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이 폐쇄된다…"해외여행 더는 당연한 일 아닐 수도"

거꾸로 가는 세계화

너도나도 타국 유입환자 차단
유럽 경계 허문 솅겐조약 위협
"관광·항공산업 궤멸적 침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각국 정부는 국경을 걸어 잠그고 있다. 타국에서 유입되는 환자를 차단하기 위해서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정부는 지난 13일부터 90개국의 무비자 입국을 금지했다. 두 달 전만 해도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었던 나라에 가기 위해 이제는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코로나19가 국가 간 연결 개념을 바꾸고 있다. 수전 올린 뉴요커 기자는 최근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에 기고한 ‘코로나19 이후의 삶’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접혀 있는 것 같던 세계지도가 코로나19 확산으로 수정될 것”이라며 “다른 나라를 여행하는 것을 그렇게 당연하게 여기지 않게 될 수도 있다”고 했다. 초연결사회로 나아가던 세계가 코로나19로 역풍을 맞게 된 것이다.

유럽 국가 간 경계를 허문 솅겐 조약이 위협받고 있는 것은 세계화가 멈췄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솅겐 조약 가입국은 유럽연합 회원국을 비롯해 총 26개국인데, 대다수가 국경을 닫았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국경을 넘나드는 관광을 중단했고 독일은 국경을 맞대고 있는 프랑스·오스트리아·스위스·룩셈부르크·덴마크 등 5개국과의 국경을 폐쇄했다. 솅겐 조약은 1985년 프랑스와 독일 등 5개국이 룩셈부르크 남부의 솅겐에서 맺은 조약이다. 국가 간 사람과 물자의 이동을 자유롭게 허용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10년 후 1995년 솅겐 조약이 발효된 뒤 관광산업은 크게 성장했다.

유엔세계관광기구(UNWTO)에 따르면 관광인구는 1995년 5억3100만 명에서 지난해 14억6100만 명으로 급증했다. 관광산업 규모는 1995년 4970억달러에서 2018년 1조4620억달러로 세 배가량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국경이 닫히면서 이 같은 성장세는 올해 큰 폭으로 꺾일 전망이다.대표적 관광국가인 이탈리아는 국내총생산(GDP)의 13%를 차지하는 관광산업이 올해 궤멸적 수준의 침체를 겪을 것으로 예상됐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이탈리아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9.1%로 발표한 것에도 이런 예측이 반영됐다.

관광이 사라지다 보니 해외여행의 핵심 운송수단을 제공하던 항공산업도 추락의 길을 걷고 있다. UNWTO가 운송 수단별로 여행산업을 분류한 결과 여행객의 58%가 비행기를 통해 국경을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장조사업체 시리엄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세계적으로 1만5500여 대의 민간 항공기가 운항을 중단하고 지상에 대기 중이다. 전체 민간 항공기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규모다. 국내에서도 국제선 승객의 90% 이상이 사라졌다. 3월 마지막주 김포국제공항의 국제선 이용객이 한 명도 없었던 것은 항공업계의 어려움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사례다.

운항 중단의 여파는 항공기 제조사로 전이되고 있다. 에어버스는 A320 생산량을 월 60대에서 40대로 줄였다. 보잉은 737맥스의 생산을 5월 재개할 방침이었지만 코로나19로 계획에 차질을 빚게 됐다.문제는 코로나19 사태가 종식된 뒤 여행을 비롯한 국가 간 자유로운 이동이 곧바로 회복될지 장담할 수 없다는 점이다. 중국은 최근 기업인들에 한해 비자 발급을 재개한다고 발표했으나 실제로는 관련 업무가 중단된 상태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