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00억 구제금융 필요"…카리브해 섬 담보 내놓은 英항공사 회장

英정부 자금 지원하면 본인 소유 카리브해 섬 사재 출연
"버진아틀란틱 생존 위해 5000억파운드 필요"
본인은 조세회피처 거주…14년간 소득세 안 내
영국의 ‘괴짜’ 억만장자인 리처드 브랜슨 버진그룹 회장(사진)이 구제금융을 받는 대가로 자신이 보유한 카리브해 섬을 담보로 내놓겠다고 밝혔다. 영국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경영난에 처한 버진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버진아틀란틱 항공사에 5억파운드(약 7600억원)의 자금을 지원해 준다면 사재를 출연하겠다는 것이다.

공영 BBC에 따르면 브랜슨 회장은 20일(현지시간) 버진그룹 임직원들에게 보낸 서한을 통해 “코로나19로 전례없는 위기에 직면하고 있는 항공사들이 각국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고 있다”며 “버진아틀란틱도 근로자들의 일자리를 유지하기 위해선 5억파운드 가량의 정부 자금지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브랜슨 회장은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카리브해 네커섬 및 섬에 있는 호화 리조트를 담보로 내놓겠다고 약속했다. 브랜슨 회장은 2006년부터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있는 무인도인 네커섬에서 거주하고 있다. 그는 “돈을 그냥 달라는 것이 아니다”라며 “반드시 그 돈을 갚을 것”이라고 말했다.

버진그룹은 1970년대 런던에서 음반판매회사로 출발해 항공·우주관광 등으로 사업을 확대한 영국의 대표 항공그룹이다. 전 세계 35개국에 400여개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총 고용인원은 7만명에 달한다.

그룹 창업자인 브랜스 회장은 영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괴짜 재벌’로 잘 알려져 있다. 어릴 때 선천성 난독증으로 고생하다 고교를 중퇴한 브랜슨 회장은 15살에 사업을 시작했다. 독특한 마케팅 기법과 함께 내기에 졌다는 이유로 공개적으로 여장을 하는 등 돌출행동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몇 년 전부터 상업용 우주관광사업에 주력하고 있다. 1984년부터 운항을 시작한 버진아틀란틱은 그룹의 대표 계열사로, 영국항공(BA)에 이어 영국에서 두 번째로 큰 항공사다. 지분의 51%는 버진그룹, 나머지 49%는 미국 델타항공이 보유하고 있다. 버진아틀랜틱은 코로나19 사태가 본격화된 지난달부터 항공 수요가 급감하면서 생존 위기를 맞고 있다. 유럽 노선을 비롯해 대부분의 항공편 운항이 중단됐다. 브랜슨 회장은 “코로나19가 언제까지 이어질 지 모르는 상황에서 버진아틀랜틱의 생존을 위해선 정부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영국 정부는 브랜스 회장의 제안에 대해 별다른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앞서 영국 정부는 지난달 버진아틀란틱의 자금지원 요청을 한 차례 거절했다. 구제금융을 요청하기 앞서 자구책을 먼저 찾으라는 이유에서였다. 회사를 살리려면 브랜슨 회장이 사재를 출연해야 한다는 것이 영국 정부의 입장이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브랜슨 회장의 재산은 지난해 기준 59억달러(7조2000억원)에 달한다. 전 세계 268번째 부자다.

영국 정부와 정치권은 그동안 브랜슨 회장에 대해서 곱지 않은 반응을 보여왔다. 정부는 브랜슨 회장이 2006년부터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서 거주하는 이유도 세금을 회피하기 위한 의도로 보고 있다. 버진아일랜드는 대표적인 조세회피처다. 억만장자인 브랜슨 회장은 영국에서는 최고 소득세율 대상이다. 하지만 네커섬으로 옮긴 2006년부터 14년 동안 소득세를 내지 않았다. 브랜슨 회장도 이를 의식한 듯 서한을 통해 “버진아일랜드로 이주한 건 노년을 이 섬에서 보내기 위한 것일뿐”이라고 해명했다.

런던=강경민 특파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