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유가 폭락하는데…휘발유값 100원 '찔끔' 떨어진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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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 비중 60%, 하락폭 일부 반영"국제 유가는 반 토막 났다는데 우리 동네 휘발유 가격은 한 달간 100원 떨어졌다."
운송·재고 소진 등 시차 원인
"그래도 기름값 하락세 너무 느리다" 지적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국제 유가가 역대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지만 주유소에서 파는 기름값의 하락세는 더디기만 하다. 소비자들은 궁금하다. 국제 유가가 떨어지는 만큼 국내 주유소 기름값은 왜 내리지 않는지. 정유업체들이 중간에서 마진을 다 가져가기 때문은 아닐지. 2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5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배럴당 -37.63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역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전거래일인 지난 17일 종가 18.27달러에서 55.90달러가 폭락했다.
반면 21일 오전 국내 주유소 휘발유값 평균은 리터(ℓ)당 1306원으로 지난 17일(1318원) 대비 12원(0.9%) 하락했다. 국제 유가는 300% 넘게 떨어졌는데 국내 기름값은 1% 하락에 그친 셈이다.
◆ 높은 세금 비중에 하락폭 제한 전문가들과 정유업계는 "기름값의 60%가 세금이기 때문에 국제유가 대비 등락폭이 제한된다"고 설명한다. 또 정유사들이 중동에서 원유를 구입해 국내까지 운송하는 데 2~3주 가량이 소요되기 때문에 시차도 발생한다고 했다.
조상범 대한석유협회 팀장은 "국내 기름값에는 리터당 교통세 교육세 주행세 부가세 등 60%가량의 세금이 포함된다"며 "세금 비중이 높은 만큼 국제유가 하락폭이 전부 반영되기 어려운 구조"라고 말했다.
휘발유를 예로 들면 리터당 교통세 529원, 교육세 79.35원(교통세의 15%), 주행세 137.54원(교통세의 26%)의 세금이 붙는다. 여기에 판매 가격의 10%인 부가세가 추가된다. 결국 리터당 1300원인 휘발유 가격 가운데 세금만 800원 넘게 부과된다.기름을 수입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도 국제 유가 하락이 즉각 반영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한다. 정유사들이 원유를 구입해 배로 선적 옮겨오는 데는 2~3주 가량이 걸린다. 여기에 개별 주유소들이 주로 한 번에 1~2주 판매량을 들여오기 때문에 재고가 소진되기 전까지 국제유가 하락분이 반영되는 건 쉽지 않다.
결과적으로 정유사가 원유를 수입하는데 2~3주, 개별 주유소들이 재고를 소진하는데 1~2주가 필요해 국제유가 하락이 국내 주유소 기름값에 반영되는 데 한 달 이상이 걸리게 된다.
◆ "모든 걸 감안해도 너무 늦게 떨어져"환율이 급등한 것도 국내 기름값 하락을 막는 원인이다. 정유사들은 원유를 수입할 때 미국 달러화로 사오는데 환율이 급등하면서 지급해야 할 원화가 늘었다. 환차손을 상쇄하기 위해서는 국내 기름값을 큰 폭으로 내릴 수 없는 것이다. 실제 지난 2월까지 1100원대에 머물던 원·달러 환율은 지난달 1200원대로 치솟은 상태다.
하지만 이 모든 걸 감안해도 국제유가 하락폭에 비해 국내 기름값 하락세가 너무 느리다는 게 대다수 소비자들의 반응이다. 오를 땐 빨리 올리더니 내릴 땐 천천히 내린다는 불만이다.
에너지·석유시장 감시단은 최근 '2020년 2~3월 석유시장 분석 보고서'를 통해 "국제 유가 하락에 비해 국내 주유소 기름값은 충분히 인하되지 않고 있다"며 "정유사와 주유소는 국제 유가 하락에 맞춰 가격을 더 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진우/차은지 한경닷컴 기자 jiin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