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수출 한 건도 힘든데…6년 연속 해낸 레고켐바이오

기술이전 계약금 1.7兆 비결은

약물과 항체만 갈아끼우면
무한대로 바이오의약품 만드는
플랫폼 기술인 '콘쥬올' 보유

김용주 대표 "이전한 기술들
임상성과 나오면서 매년 매출↑"
레고켐바이오사이언스는 2015년부터 해마다 한 건씩 기술수출을 했다. 총 6건의 기술이전 계약금을 모두 합하면 1조7000억원에 달한다. 지난 14일 발표한 익수다테라퓨틱스와의 기술이전 계약금은 4963억원이었다. 김용주 레고켐바이오 대표(사진)는 “이전한 기술들의 임상 성과가 나오면서 단계별 성과급(마일스톤)과 로열티 수입이 해마다 늘어날 것”이라며 매출 증대에 자신감을 드러냈다. 하나의 기술로 수십 개의 기술이전이 가능한 ‘플랫폼 기술’, 기술 개발 전부터 이뤄진 ‘목표약물특성(TPP) 조사’, 글로벌 제약사에서 얻은 정보를 임상 진입에 활용하는 ‘징검다리 전략’ 등 3박자가 맞아떨어진 성과다.

기술 하나로 판매는 수십 곳에레고켐바이오는 단 하나로 수십 건의 기술이전이 가능한 ‘효자상품’을 갖고 있다. 이 회사가 보유한 무기는 약물-항체 결합(ADC) 기술인 ‘콘쥬올(ConjuALL)’이라는 플랫폼 기술이다. 바이오의약품은 약물 단백질과 이 약물이 작용하는 항원(질병 단백질)을 표적하는 항체로 이뤄져 있다. 약물과 항체를 이어주는 접합체가 링커(linker)다. 약물이 효능을 발휘하기 위해선 암세포 등 특정 항원에서만 링커의 연결이 끊어져 약물이 제때 방출돼야 한다. 하지만 혈관을 돌다가 링커가 끊어져 엉뚱한 곳에서 약물이 방출되는 일이 많다.

레고켐바이오는 암세포 등 특정 항원에서 둘 사이의 연결을 끊어 약물이 특정한 곳에서만 방출되도록 하는 링커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약물과 항체만 갈아끼우면 이론적으로 무한대의 바이오의약품을 만들 수 있는 셈이다.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규모 ADC 학회인 ‘월드 ADC 서밋’에서 2018년과 2019년 2년 연속으로 ‘베스트 플랫폼 어워드’를 수상하는 등 기술성도 인정받았다.

김 대표는 “익수다와의 계약은 우리가 보유한 ADC 기술을 특정 항체 세 개에 쓸 수 있는 권리를 판 것”이라며 “항체마다 개별적으로 기술수출을 하면 하나의 플랫폼 기술을 가지고도 얼마든지 새로운 기술이전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약품 개발 전부터 판매 업체 골라”

김 대표는 ‘바이오업계 사관학교’로 불리는 LG생명과학 출신이다. 2000년대 초반 LG생명과학이 바이오 사업을 구조조정하면서 연구원 수십 명이 회사를 떠났다. 김 대표는 이들 중 7명과 함께 사업을 시작했다. 2012년엔 다국적 제약사인 아스트라제네카와도 기술이전 계약을 맺었다. 김 대표는 기술수출이 계속될 수 있는 비결로 LG생명과학 연구원 시절에 터득한 ‘TPP 조사법’을 꼽는다. TPP란 새 약물 개발에 앞서 경쟁사와 시장 수요를 분석해 어떤 제품을 개발하고 어디에 기술이전할지를 설정하는 절차다. 김 대표는 “보유 중인 파이프라인(후보물질) 10여 개 모두 개발 전 TPP를 설정해 경쟁 약품 대비 강점은 물론 판매처까지 미리 정했다”고 말했다.

국제적 기준에서 통용되는 자료를 구비하는 것도 중요하다. 김 대표는 “2012년 기술이전 당시 아스트라제네카에서 요구한 자료의 제목 수만 200여 개에 달했다”며 “해외에서 통용되는 표준이 무엇인지 사전에 파악해 연구노트를 뒤지고 연구원을 인터뷰하는 등의 절차를 목록으로 작성해둬야 한다”고 설명했다.계약금 덜 받고 임상 자료 확보

벤처기업은 해외 임상 절차에 익숙지 않아 기술이전을 할 때 시행착오를 겪기 마련이다. 이런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 레고켐바이오는 해외 제약사를 ‘징검다리’로 활용한다. 임상 2상 단계에서 중국 등 해외 제약사에 기술이전할 때 미국 임상에 필요한 자료를 받는 조건을 계약서에 넣는 것이다. 레고켐바이오는 마일스톤을 덜 받는 대신 다른 업체를 통해 다른 국가 시장에 진입할 때 활용할 수 있는 임상 결과를 확보하고 있다.

2015년 중국 포순제약과 맺었던 계약이 징검다리 전략의 대표 사례다. 포순제약에 기술이전했던 ADC 기술은 올해 임상 1상 중간결과가 나올 예정이다. 레고켐바이오는 이 결과를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제출하는 임상 승인 신청서에 맞는 양식으로 받기로 했다. 김 대표는 “자금력이 크지 않은 중소벤처기업이 임상 2·3상까지 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초기 시장에 진입하려는 벤처라면 기술이전 때 마일스톤보다는 임상 결과를 받아 다른 시장 진입의 교두보로 활용하는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파이프라인을 10개 정도 꾸준히 유지해 지속적으로 기술이전할 계획”이라고 했다.

이주현/임유 기자 de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