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트럼프 지지율이 말하는 세 가지

주용석 워싱턴 특파원
미국 의회 보좌관 출신 인사가 작년 여름에 들려준 얘기다. “미국 정치 여론조사엔 ‘지금 나라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느냐’는 질문이 있다. 1980년 이후 통계를 보면 여기에 ‘그렇다’고 답한 비율에 13~16% 정도를 더한 수치가 대통령 지지율이었다. 그런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 갭이 6~7% 정도밖에 안 된다. 과거 통계로 보면 트럼프 지지율은 여론조사보다 최대 10% 정도 더 나올 수 있다.”

그는 “이 10%가 ‘샤이 트럼프’일 수도 있다”고 했다. 트럼프는 2016년 대통령선거 때 거의 모든 여론조사에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에게 뒤졌지만 실제 투표에선 이겼다. 여론조사에 잡히지 않은 트럼프 지지층이 많았던 것이다. 이 때문에 미 정치권에선 ‘트럼프는 여론조사보다 강할 수 있다’고 보는 분위기가 강했다. 주식으로 치면 트럼프는 ‘저평가주’였다.'나라 올바로 가고 있다' 줄어

그런데 요즘 여론조사를 보면 ‘트럼프 저평가’ 현상이 사라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트럼프의 지지율은 과거 대통령 지지율 통계처럼 ‘나라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13~16%’ 수준에서 나오고 있다.

흥미로운 건 이전에 비해 ‘나라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응답자 비율은 줄어들었거나 제자리걸음인데 트럼프 지지율은 오히려 높아졌다는 점이다.유고브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나라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응답은 1년 전(2019년 4월 21~23일) 36%, 올초(2020년 1월 1~3일) 35%에서 이달(2020년 4월 19~21일) 31%로 하락했다. 반면 이 기간 트럼프 지지율은 42%→41%→46%로 나타났다.

정치 분석 사이트 ‘파이브서티에이트(538)’가 각종 여론조사를 토대로 집계한 트럼프 대통령의 평균 지지율은 4월 초 45.8%까지 올라 취임 후 최고 수준을 기록하기도 했다. 다만 지지율 상승폭이 크진 않고, 최근엔 지지율이 43.6%로 둔화됐다.

트럼프의 이런 지지율 변화를 어떻게 봐야 할까. 첫째 11월 대선이 다가오고 정치적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샤이 트럼프’가 사라졌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과거 샤이 트럼프가 이제는 여론조사에서 적극적으로 트럼프 지지 의사를 밝히고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 트럼프는 대선에서 여론조사 때 드러나지 않은 ‘플러스알파’의 지지를 기대하기 어렵다.'샤이 트럼프' 사라졌을 수도

둘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트럼프가 보인 불안정한 모습이 원인일 수 있다. 통상 위기 땐 국민들이 리더에게 힘을 실어주는 경향이 있다. 이 덕분에 트럼프 지지율도 오르긴 했다. 하지만 트럼프는 코로나19의 위험성에 대한 행정부 내 사전경고를 무시해 이번 위기에 늑장대응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매일같이 등장하는 코로나19 브리핑에서도 자화자찬성 발언과 부정확한 정보 제공으로 혼란만 부추긴다는 비판이 많다. 그런 탓에 위기 시 지지율 결집 효과를 충분히 누리진 못하고 있다. 이는 앤드루 쿠오모 뉴욕주지사와 대비된다. 뉴욕주는 미국 내 코로나19의 최대 진원지지만 쿠오모 지사는 솔직하고 책임감있게 대응해 지지율이 2월 44%에서 3월 말 77%로 뛰었다.

셋째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 후 현재까지 지지율은 버락 오바마, 조지 W 부시, 빌 클린턴 등 1990년대 이후 재선 대통령의 첫 임기 때 지지율에 비해 낮다. 트럼프 대통령은 11월 대선에서 재선을 장담하지만, 여론은 그의 생각처럼 움직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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