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이란 또 무력충돌 신경전…'유가 올리려는 연극?' [선한결의 중동은지금]

이란 군사위성 발사…걸프만서도 미군과 대치
“이미 美 ‘최대 압박’ 받는 이란, 이제 잃을 것 없어”
미·이란 무력충돌 가능성에 내리던 유가 반등
앙숙 관계인 미국과 이란이 또 신경전에 돌입한 모양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번지며 한동안 잦아들었던 양국간 갈등이 심화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미국과 이란 각각 역내 갈등을 고조하면 유가 폭락세를 멈추고 자국내 불만 여론을 잠재우는 등 얻을 수 있는 것들이 많아서다.

◆이란 첫 군사위성 발사…美 "미사일 개발용, 안보리 위반" 22일 워싱턴포스트(WP)와 알자지라 등에 따르면 이날 미국과 이란은 걸프만과 이란 군사위성 발사를 두고 각각 설전을 벌였다. 이날 이란혁명수비대(IRGC)는 첫 군사위성 발사에 성공했다고 국영방송을 통해 발표했다.

이란은 이번 인공위성을 군사적 목적으로 쓰겠다는 계획을 강조했다. 알자지라에 따르면 이란 위성 발사 발표를 놓고 IRGC가 전면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간은 이란 국방부 우주 프로그램 당국이나 이란과학기술연구소 등이 위성 발사를 발표했다. 이란은 지난 2월 자체 개발한 인공위성 ‘자파르’를 발사했을 때도 그랬다. 당시 이란 당국은 이 위성을 자원과 자연재해 연구 등에 쓸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파르는 목표 궤도 진입엔 실패했다.

인공위성을 발사한 곳도 기존과 다르다. 기존엔 주로 이란의 민간 우주 프로그램이 운영되는 이맘호메이니 국가우주센터에서 위성을 발사했다. 이번엔 비공개 IRGC 기지에서 발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미들베리 국제학연구소 산하 제임스 마틴 비확산연구센터의 파비안 힌즈 연구원은 “이란 국영방송 이미지를 근거로 보면 이번 인공위성 발사가 테헤란에서 북동쪽으로 약 330㎞ 떨어진 샤흐루드 인근 IRGC 기지에서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누르 인공위성이 정보수집 등 군사적 목적으로 쓰일 수 있다고 설명한 이란 타스님 통신 인포그래픽
중동 현지 언론들은 이란이 이 위성을 정보수집과 육상·해상 군사 통신망 확보에 활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날 호세인 살라미 IRGC 총사령관은 “오늘날 군사 강국이라면 우주에도 방위 체계를 마련해놔야 한다”며 “이제 이란은 우주에서 세상을 내려다 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 위성 이름은 ‘누르’로, 이란 중북부 사막에서 발사돼 425㎞ 상공 궤도에 안착했다”고 밝혔다.

현지 언론들에 따르면 이란은 이번 인공위성 발사로 이란의 미사일 범위가 5000㎞까지 늘어났다고 주장했다. 이란은 기존엔 미사일 범위를 2000㎞ 이하로 유지하겠다는 방침이었으나 최근 미국과의 갈등 여파로 강경파가 득세하면서 이를 수정하려는 움직임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즉각 견제에 들어간 모양새다. 미국은 이란이 대륙간탄도미사일을 개발하기 위한 핑계로 인공위성을 연구하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인공위성 발사체 기술이 대륙간탄도미사일에 쓰이는 것과 비슷해서다.

이날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기자회견서 “이란이 이번에 인공위성을 발사한 것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결의를 위반했을 여지가 크다”며 “이를 꼭 따져봐야 할 것이며, 이란은 자국이 벌인 일에 책임져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유엔 안보리는 2015년 결의안 2231호를 통해 이란에 핵탄두를 탑재할 수 있는 탄도미사일 개발을 최장 8년간 추진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


◆트럼프 “이란 함정, 도발하면 쏴버려”…이란 “걸프만 도발에 확고히 대응” 같은날 미국과 이란은 걸프만을 놓고도 설전을 벌였다. 걸프만은 세계 원유 물동량 상당수가 이동하는 요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에 “해상에서 이란 무장 고속단정이 미군 군함을 괴롭힐 경우 공격해 파괴하라고 해군에 지시했다”는 글을 올렸다. 지난 15일 걸프 해역 북부에서 미군 함정과 이란 선박이 근거리 대치를 벌였던 일을 두고 이란에 경고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군에 따르면 미군과 해경 함정 6척은 지난 15일 걸프만 공해상에서 미 육군 헬기와 통합작전을 벌이던 중 이란 IRGC 해군 고속단정 11척과 1시간 가량 대치했다. 당시 이란 선박들은 미군 함정에 거의 9m 거리까지 근접해 미군 함정을 위협·도발했다는게 미군의 주장이다.

트럼프 대통령 등의 경고에 이란도 강수로 맞서고 있다. 이날 이볼파즐 셰카르치 이란군 대변인은 “미국은 다른 나라를 괴롭히려들지 말고 자국내 코로나19 사태를 해결하는 데에나 집중하라”고 응수했다. IRGC는 지난 19일 “이란은 걸프만에서 미국이 벌이는 어떤 실수에든 확실하게 대응할 것”이라며 “걸프만에서 이란을 도발하면 안보 위협으로 받아들일 것”이라고 위협했다. IRGC는 당시 IRGC가 일대를 예정대로 순찰하던 중 미군이 IRGC 선박에 접근해 위협했다고 반박했다.

◆유가 올리려는 ‘스턴트’? “한동안 장기화 예상”

전문가들은 이번 갈등이 한동안 고조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파비안 힌즈 미들베리국제학연구소 연구원은 “이란의 군사 위성 발사는 ‘레드 플래그’(위험신호)”라며 “이란은 이미 미국으로부터 ‘최대 압박’을 받고 있고, 이젠 더이상 잃을게 별로 없는 나라”라고 지적했다. 헨리 롬 유라시아그룹 이란 선임연구원은 “최근 이란 IRGC 등의 해상 도발이 잦아졌고, 이란 당국은 IRGC에 배정한 예산을 크게 늘렸다”며 “여기다 군사 위성까지 발사했으니 매우 좋지 않은 조짐”이라고 말했다.

누르 인공위성이 정보수집 등 군사적 목적으로 쓰일 수 있다고 설명한 이란 타스님 통신 인포그래픽
일각에선 미국과 이란 모두 이번 갈등 상황을 이어가는게 이득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과 이란 모두 코로나19 초동 대처에 실패해 자국 내 여론이 악화됐고, 최근 유가 폭락세에 민간 경제까지 타격을 받은 상황이라서다. 양국 모두 ‘외부의 적’을 이용하면 여론 불만을 잠재울 수 있다. 미국은 오는 11월 대선을 앞두고 있어 여론 관리가 필수다. 이란은 작년 말과 올해 초 각각 대규모 반(反)정부 시위를 겪어 체제 유지를 위해서라도 외부의 적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양국 입장에선 갈등은 유가 폭락세도 막을 수 있다. 지난 1월 미국과 이란이 무력충돌 직전까지 가자 주요 유종은 60달러선에 거래됐다. 양국간 갈등 조짐이 커지면서 유가는 반등했다. 미국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6월 인도분은 배럴당 10.26달러까지 내렸다가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 이후 19.1% 올라 13.78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같은날 북해산 브렌트유(6월 인도분)는 영국 국제상업거래소(ICE)에서 19달러 선에 거래됐으나 20달러 선을 회복했다. 미국 외교안보 싱크탱크인 애틀랜틱카운슬의 바바라 슬라빈 이란미래연구소장은 “이란이 군사위성 등을 한동안 각종 협상 카드로 쓸 것”이라고 내다봤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