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비디오 연체료 아까웠던 '영화광' 넷플릭스 만들다

절대 성공하지 못할 거야

마크 랜돌프 지음 / 이선주 옮김
덴스토리 / 468쪽│1만8000원
“샴푸 얘기는 더 이상 하지 마.” 1997년 어느 날 리드 헤이스팅스는 마크 랜돌프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들은 사업 구상을 위해 한 고객에게 지속적으로 팔 수 있는 물건을 찾던 중이었다. 랜돌프는 치약과 샴푸 등을 떠올렸고 헤이스팅스는 그때마다 고개를 저었다. 랜돌프는 며칠이 흐른 뒤 새로운 아이디어를 냈다. “비디오테이프.” 헤이스팅스는 이번에도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생각조차 하기 싫어. 비디오테이프를 늦게 돌려줘서 얼마 전 40달러를 물어냈어. 그런데….” 그는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고, 한참 후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랜돌프와 헤이스팅스는 넷플릭스의 공동 창업자다. 랜돌프는 넷플릭스의 초대 최고경영자(CEO)를 지냈고 헤이스팅스는 현재 회장이자 CEO다.

랜돌프가 쓴 《절대 성공하지 못할 거야》는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넷플릭스가 만들어지고 발전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그의 사소한 아이디어는 조금씩 발전됐다. 샴푸에서 비디오테이프, 디지털비디오디스크(DVD)로 바뀌었다. 하지만 그가 처음 사업 구상을 밝혔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반대했다. 아내마저 “절대 성공하지 못할 거야”라고 말했다.랜돌프와 헤이스팅스는 과감히 사업을 추진했다. 사업을 구상한 지 1년 후인 1998년, 넷플릭스는 온라인으로 DVD를 대여하고 판매하는 서비스를 세계 최초로 시작했다. 사업 초기 직원은 단 7명이었다. 이들은 낮은 연봉에도 사업의 가능성을 보고 함께했다. 이들은 미국에 출시된 모든 DVD를 확보하고, 소니 도시바 등과 제휴해 DVD플레이어를 구매하면 넷플릭스 무료 대여 쿠폰을 주는 판촉 활동을 벌였다. 이를 통해 넷플릭스는 미국에서 인지도를 쌓아갔다.

하지만 가입자가 늘어날수록 적자가 불어났다. 두 사람은 아마존에 회사를 매각하려고 제프 베이조스를 만났다. 베이조스는 터무니없이 적은 액수를 제시했고, 협상은 무산됐다. 그런데 이 만남을 통해 두 사람은 큰 결단을 내렸다. 매출의 97%를 차지하던 DVD 판매 사업을 포기하고, 대여 사업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넷플릭스는 ‘연체료 없는 월간 이용 서비스’의 대명사가 됐다.

위기는 이후에도 반복됐다. 2000년 닷컴 열풍이 붕괴하면서 직원의 40%를 감원하는 구조조정을 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넷플릭스는 ‘미국 전 지역 1일 배송’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후 온라인으로 동영상을 스트리밍하는 사업을 하면서 넷플릭스는 세계적인 기업으로 발돋움했다.이 책은 랜돌프와 헤이스팅스의 관계도 잘 그려냈다. 사업을 시작한 지 1년6개월 후 헤이스팅스는 CEO를 맡고 있던 랜돌프의 자질에 의문을 제기하며 공동 운영을 제안했다. 랜돌프는 엉뚱하지만 창의적이었고, 헤이스팅스는 냉철하면서도 합리적인 인물이었다. 랜돌프는 이를 수락했다. 두 사람은 시너지를 내며 넷플릭스를 이끌었다. 랜돌프는 스타트업의 역동적인 문화를 만끽하기 위해 2003년 퇴사했다. 두 사람은 이후 지금까지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랜돌프는 “절대 성공하지 못할 거야”라는 주변 사람들의 말에 “아무도 모른다”며 “과감히 시작해 보라”고 제안한다. “누구든 꿈을 현실로 바꾸려면 그냥 시작해야 한다. 뭔가를 창조하고, 만들고, 시험하고, 팔아보라. 그 구상이 좋은지 아닌지는 저절로 알게 된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