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영하권 이상기온…전국 과수 농가 '냉해'로 시름

배·사과·복숭아 등 피해…"손쓸 방법이 없어 난감"
"왕겨·짚 태워 온도 올리고 인공수분 횟수 늘려야"
"어떻게 손쓸 방법이 없어요. 그저 바라만 보자니 속은 타들어 가고…."
전북 익산시 황등면에서 3만㎡ 농지에 배를 재배하고 있는 이경은(57)씨는 아침마다 영하권으로 떨어지는 날씨가 야속하기만 하다.

새하얗게 만개했어야 할 배꽃은 거뭇거뭇하게 물들었다.

꽃잎은 누런 갈색으로 변했고 초록의 씨방(속씨식물의 밑씨가 들어 있는 곳)은 검게 썩었다. 이씨의 배밭 70%가량이 이런 상황이다.

봄철 이상기온으로 일찍 핀 꽃이 0도 이하로 낮아진 기온에 '냉해' 피해를 보고 있다.

이대로 가면 9∼10월에 배 수확량이 절반 이하로 떨어진다는 게 이씨의 설명이다. 과실이 열린다고 해도 기형과가 나오거나 크기가 작을 수밖에 없다.

이씨는 "배를 재배한 지 20년째인데 이런 냉해는 처음"이라며 "달리 손쓸 방법이 없어서 더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4월 초부터 전국의 기온이 뚝 떨어지면서 개화기와 파종기의 농작물들이 시들고 있다. 올봄 이상고온으로 개화 시기가 빨라진 이후 꽃샘추위가 갑자기 찾아왔기 때문이다.

전남의 배 농가도 울상이다.

지난달 말부터 이달 초까지 기온이 영하 4도까지 떨어지는 이상 저온 현상이 발생해 나주 지역 배 재배면적 1천943㏊ 중 50%인 972㏊가 저온 피해를 봤다.

나주지역은 전국 배 재배 면적의 20%가량을 차지하는 배 주산지다.

이 지역은 2018년과 2019년에도 각각 전체 배 재배면적의 52%와 43%에 저온 피해가 발생했다.

나주시 관계자는 "배 개화기에 영하 1.7도 이하가 30분 이상 지속하면 배꽃 암술머리 등이 검게 변하는 등 저온 피해가 발생한다"며 "봉황면과 금천면 일대 배 재배면적의 50%가 저온 피해 본 것을 확인해 농림축산식품부에 피해 사실을 보고했다"고 말했다.
다른 작물의 냉해 피해도 적지 않다.

경북에서는 배뿐만 아니라 사과와 복숭아 등도 피해가 속출했다.

경북도에 따르면 지난 5일과 6일 아침 최저 기온이 봉화 석포 영하 6.5도, 안동 예안 영하 4.9도 등으로 내려가 1천301㏊에서 농작물 피해가 발생했다.

이어 9일과 22일에도 아침 기온이 크게 떨어지면서 추가 피해가 나 3천171㏊로 증가했다.

작목별 피해 규모는 사과가 1천82㏊로 가장 많고 복숭아 602㏊, 배 597㏊, 자두 394㏊ 등이다.

시·군별로는 청송 563㏊, 영천 442㏊, 의성 438㏊, 상주 419㏊ 등으로 피해가 컸다.

경북도 관계자는 "과수 꽃눈이 얼어서 떨어지는 등 피해가 발생했다"며 "이번 주 아침 기온이 계속 낮을 것으로 예보돼 추가 피해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녹차로 유명한 경남 하동군도 이 시기에 이상 저온이 발생해 큰 피해를 봤다.

고급 녹차 한 종류인 '우전'을 재배하는 농가 80%가 피해를 보았다.

이는 하동군 전체 녹차 농가의 20%에 해당한다.

하동녹차연구소 관계자는 "잎에서 새순이 올라오는 시기에 이상기후가 발생해 피해가 크다"며 "구체적인 피해 면적 등은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남의 전체 사과 농과 63%(피해 면적 1천762㏊)에 해당하는 1천680 가구도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나상수 농촌진흥청 기술보급과 농촌지도관은 "지면으로부터 3m가량 떨어진 위치에 대형 선풍기를 설치하면 대기 중의 따듯한 온도를 바닥으로 떨어뜨릴 수 있어 냉해가 예방된다"며 "과수원 곳곳에 왕겨나 짚을 태워 온도를 올리는 것도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그러면서도 "사실 기온이 영하 2∼4도면 이와 같은 방법으로 냉해를 일부 막을 수 있지만 이번달 처럼 영하 8∼9도로 떨어지면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냉해를 입었을 경우 어떻게 하든 나무에 열매가 달리는 착과율을 높이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인공수분 횟수를 늘려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승현 김동민 이승형 임채두 기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