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건강·인재 양성 위해 뛴 94년…유한양행, 글로벌 제약사로 우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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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기업이 뛴다유한양행이 올해로 창립 94주년을 맞았다. 기업 평균 수명의 다섯 배가 넘는 시간 동안 유한양행은 버드나무 상징과 함께 국내 대표 제약사로 뿌리내렸다. 1925년 고국에 돌아온 유일한 박사는 일제 강점기에 질병과 가난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보고 ‘건강한 국민만이 잃어버린 주권을 찾을 수 있다’며 1926년 유한양행을 창립했다. 당시만 해도 의약품은 한약이 주를 이뤘고 양약의 경우 일본인 최우선 정책으로 조선인이 의약품산업을 운영하기란 매우 어려웠다.
○민족 건강 생각한 1세대 기업유한양행은 의약품 수입을 독점해오던 일본 상사들과 경쟁하며 민중 사이에 만연해 있던 피부병, 결핵, 학질, 기생충 감염 퇴치에 노력했다. 외국 의약품 의존에서 벗어나기 위해 1933년 자체 1호 개발품인 안티푸라민을 시작으로 구충제, 피부병약을 제조해 판매하기 시작했다.
1936년에는 본격적으로 제약공장과 실험연구소를 경기 부천시 소사에 건립하고 회사 형태를 주식회사로 변경했다. 이듬해인 1937년부터는 해외 지점을 통해 중국 각지와 베트남에 이르기까지 위장약, 구충제, 결핵 치료제 등을 수출했다. 만주를 비롯해 미국 로스앤젤레스 등 해외에 지사와 공장, 출장소를 둔 글로벌 1세대 기업이기도 하다.1960년대엔 외국 유명 제약기업들과 기술 제휴를 맺기 시작했다. 제약업계에서는 처음으로, 국내 기업 중에는 두 번째로 기업공개를 단행하고 주식을 상장해 경영의 합리화를 꾀했다. 또 자본과 경영을 분리해 현대적 경영체제를 갖춰 한국 기업 경영의 모범이 됐다.
○전문경영인 기틀 마련·전 재산 환원
1967년에는 국세청으로부터 오차 없는 납세 실적을 인정받아 국내 기업 최초로 모범납세업체로 선정됐고 이듬해엔 동탑산업훈장을 받았다. 1969년 유일한 창업자는 조권순 사장에게 사장직을 물려주며 전문경영인 체제의 길을 열었다. 유 창업자는 1971년 타계하면서 유한재단과 유한학원의 전신인 공익법인 ‘한국사회 및 교육원조신탁기금’에 전 재산을 기부했다. 기업 최대주주가 공익재단이 돼 기업 이윤의 사회 환원이 영구적으로 가능한 시스템을 갖췄다.
이는 기업 이익이 사회적 이익 증대로 이어지는 국내 최초 ‘기업의 사회적 책임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유한양행의 성장이 유한재단을 통해 장학금과 복지 사업으로, 유한학원을 통해 교육 사업으로 흘러가며 사회적 가치를 증대한다는 의미다.
1979년에는 현대적 생산시설을 갖춘 경기 안양공장을 준공하고 1985년 4월 국내 최초로 우수의약품 제조 및 품질 관리기준(KGMP)의 적격 업체로 지정받았다. 이 시기에는 국제화 시대에 발맞춰 합작투자 법인인 유한킴벌리, 유한크로락스, 유한스미스클라인, 유한사이나미드, 한국얀센 등을 설립해 고속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1990년대에는 자체 개발한 기술을 미국과 일본에 수출하고 인도에 합작투자회사를 설립해 체계적인 제약사로 발돋움하는 기틀을 마련했다. 2005년 경기 용인에 중앙연구소, 2006년 충북 오창에 최고 수준의 시설과 기술을 갖춘 신공장을 준공했다. 2013년 국내 제약업계 매출 1위로 올라선 유한양행은 2014년 업계 최초로 매출 1조원을 달성했다.
○‘위대한 기업’ 실천하는 100년 기업
유한양행은 유 창업자의 뜻에 따라 1969년부터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전문경영인 체제를 확립해 공채 출신 최고경영자(CEO)가 회사를 이끌고 있다. 1926년 설립 이후 6·25전쟁 기간을 제외하고는 한 차례도 적자를 기록한 적이 없다.이정희 유한양행 사장은 미래 성장동력 창출이라는 시대적 소명을 실현하고 있다. 미래 성장동력의 핵심 역량인 연구개발(R&D)에 투자를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이를 통해 가시적인 성과도 내고 있다. 2018년과 2019년엔 폐암 치료 신약 물질인 레이저티닙을 비롯해 3조5000억원에 달하는 네 건의 기술수출 계약을 맺었다. 글로벌 개방형 혁신의 전초기지인 미국 현지법인 유한USA를 필두로 적극적인 현지화도 추진하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유한의 기업 비전은 글로벌 유한, 그레이트(great) 유한”이라며 “외형적 성장을 넘어 100년 기업이 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설명했다.
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