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재길의 경제산책] 시대 뒤처지면 공공기관 만들어 해결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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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 문제로 톨게이트 무인화 지연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5월 취임 후 처음 소화했던 공식 외부 일정은 인천국제공항을 방문한 일이었습니다. 임기 내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했지요. 인천공항은 우여곡절 끝에 지난달 인천공항경비라는 자회사를 설립했고 정규직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한전 스마트 계량기 도입도 영향
석탄발전, 사양길 걷자 공공기관화
“새 일감 찾아주는 상생 해법 필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정책에 따라 작년 말까지 중앙행정기관 및 지방자치단체에서 비정규직 19만여명이 정규직으로 전환한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올해까지 목표로 삼았던 20만5000명 대비 94%에 달하는 전환율입니다. 이 중 76%는 공공기관이 직접고용했고, 나머지만 공공 성격의 자회사를 세워 정규직으로 전환했습니다.다만 이 과정에서 산업구조의 변화에 대한 고민이 얼마나 있었는지 의문입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나 민간 부문의 공공기관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상생 해법에 대한 논의가 사실상 없었던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공기업인 한국도로공사는 연내 스마트 톨링 시범 사업을 마무리 짓고 추후 전면 도입을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스마트 톨링은 통행 요금을 하이패스로 납부하거나 현금으로 지불하지 않고 차량이 요금소를 통과하면 번호판을 자동 인식해 사후 부과하는 방식입니다. 운전자가 요금소를 통과할 때 속도를 늦출 필요가 없습니다. 미국 영국 등 선진국에선 이미 수 년 전 도입했지요.
걸림돌은 5700여명에 달하는 요금 수납원의 고용안정 문제입니다. 도로공사가 전체 인력의 정규직 전환을 결정하면서 하이패스 추가 설치는 물론 스마트 톨링 시스템 도입까지 지연이 불가피하게 됐습니다. 신개념 고속도로 톨링 시스템을 수납원 정년에 맞춰 늦춰야 하는 상황이 된 겁니다. 국가적으로 정년이 연장되면 더 늦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시대 변화에 발 맞춰, 요금 수납원의 전환 배치 등에 대해선 적극적인 검토가 이뤄지지 않았던 점이 아쉽습니다.또 다른 공기업인 한국전력도 마찬가지입니다. 한전엔 5200여명에 달하는 검침원이 있지요. 주택마다 돌아다니며 전력 사용량 등을 일일이 체크한 뒤 전기요금을 부과하는 인력입니다. 정부가 진작부터 스마트 전력 계량기(AMI) 보급을 확대해 왔는데, 이 사업이 조만간 완료되면 검침원을 대폭 감축해야 할 상황이었습니다. 전국 가구에 AMI만 깔아 놓으면 원격으로 요금 계산은 물론 훨씬 더 다양한 계측이 가능하기 때문이죠. 검침원이란 직종 자체가 사라질 위기였던 겁니다. 한전은 전체 검침원에 대해 최근 정규직 전환을 완료했습니다. 한전의 재무구조 악화와 맞물리기는 했지만, 검침원들이 정년 퇴직할 때까지 자동화된 전력계측기를 서둘러 보급할 필요성이 적어졌습니다.
전국 석탄화력발전소에 근무하는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정규직화도 같은 맥락입니다. 세계적으로 석탄화력 발전은 축소되는 추세입니다. 국내에선 범정부적으로 석탄화력 감축을 추진해 왔지요. 필연적으로 화력발전소 비정규직 고용이 불안정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 민간 기업인 한전산업개발의 공공기관 전환이 적극 추진되고 있는 배경 중 하나입니다. 한전산업은 한국서부발전 한국동서발전 등 발전 공기업들이 운영하는 석탄화력발전소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근로자들이 소속돼 있는 민간 회사이죠. 2600여명이 소속돼 있습니다.
한전산업이 공공기관화를 원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2015년의 영동화력 발전소(한국남동발전) 입찰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경쟁 입찰에서 한전산업이 탈락하자 120여명의 사내 근로자(직전까지 영동화력에서 비정규직으로 근무했던 인력) 일감이 한꺼번에 사라졌습니다. 한전산업엔 큰 충격이 왔지요. 이후 “공기업 정규직으로 만들면 고용 불안은 사라질 것”이란 공감대가 생겼습니다. 공공기관화할 경우 일감이 없더라도 정년까지 구조조정이 불가능하기 때문이죠. “현재의 인력들이 정년까지는 버틸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게 내부 전언입니다.고용 안정은 매우 중요한 이슈입니다. 하지만 시대 변화에 뒤처진 일부 업종의 혁신까지 늦추면 국민 전체의 편익이 훼손될 수 있습니다. 기존 인력의 고용을 유지하되 새로운 일감이나 업무를 찾아주는 방식의 적극적인 상생 해법을 더 고민해야 합니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