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국부펀드, 이번엔 美 엔터주 저가매수 [선한결의 중동은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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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서트 기업 지분 대거 매입석유 부국 사우디아라비아의 국부펀드(PIF)가 미국 엔터테인먼트 기업 주식을 대거 사들였다. 최근 사우디PIF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주가가 확 깎인 관광·엔터테인먼트 기업 지분을 사모으고 있다.
사우디PIF "라이브네이션 지분 5.7% 보유" 공개
라이브네이션은 연초대비 주가 41% 하락
단기 성적표는 '마이너스'…"저유가 시대 대비 포트폴리오 다각화"
27일(현지시간) 미국 CNBC에 따르면 사우디PIF는 이날 엔터테인먼트 기업 라이브네이션의 지분 5.7%를 보유하고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미국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사우디PIF는 라이브네이션의 주식 1233만7569주를 갖고 있다. 이날 라이브네이션 주가로 추산한 지분가치는 약 5억1800만 달러(약 6350억원)다. 사우디PIF는 공개시장에서 주식을 매입하는 식으로만 라이브네이션 지분을 확보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사우디PIF는 이번 투자와 관련해 라이브네이션 경영진에 직접 접촉하거나 증권사의 중개 등을 따로 거치지는 않았다. 주식 매입 시점은 알려지지 않았다.
이번 투자로 사우디PIF는 리버티미디어, 뱅가드그룹에 이어 라이브네이션 3대 주주가 됐다. 이날 사우디PIF가 라이브네이션 지분을 사들였다고 공개하자 라이브네이션 주가는 전날보다 9.86% 오른 42.01달러에 장을 마쳤다. 라이브네이션은 연초대비 주가가 41.5% 낮다. 코로나19 여파로 주요 사업인 콘서트와 대형 행사가 줄줄이 취소되서다. 자회사 티켓마스터가 대규모 환불 조치를 이어가고 있다는 점도 기업 현금흐름에 상당한 부담이다. 조 베르히톨드 라이브네이션 사장은 이날 폭스비즈니스와의 인터뷰에서 “코로나19 여파로 지난 한 달간 취소·축소된 행사가 지난 10년간 취소·축소된 행사 수보다 많다”며 “행사 약 5만건이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라이브네이션은 이미 행사 3만건 이상에 대해 환불을 끝냈고, 이로 인해 빠져나간 돈이 4억 달러가 넘는다”고 덧붙였다. 이같은 이유로 라이브네이션은 최근 채용을 동결하고 경영진에 대해 50% 감봉 조치를 시행했다. 마이클 라피노 CEO는 올해 연봉을 아예 받지 않기로 했다.
사우디PIF는 라이브네이션의 주가 약세를 보고 ‘저가매수’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사우디 왕실 측근은 파이낸셜타임스에 “앞으로 몇주간은 PIF가 인수·투자에 적극 나설 것”이라며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저평가된 자산에 투자해야 한다는 점을 배웠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우디PIF는 최근 코로나19로 타격을 입은 기업을 골라 투자하고 있다. 지난 6일엔 미국 크루즈 기업 카니발 주식 4350만 주를 취득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카니발 전체 지분의 약 8.2% 수준이다. PIF는 지난달 26일께 미국 뉴욕 증시에서 공개시장 주식 매입을 통해 카니발 지분을 사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크루즈 여행 수요가 급감해 연초대비 주가가 약 70% 내렸을 때다. 사우디의 '저가매수' 전략은 당장은 마이너스 성적을 내고 있다. 사우디PIF가 지분을 매입했다고 공개한 이후 카니발 주가는 소폭 올랐지만 아직 사우디PIF 매입 시점 주가에 이르진 못하고 있다. 27일 기준 종가가 12.98달러로 지난달 26일(17.82달러)보다 약 27% 낮다. 카니발은 사우디PIF가 주식을 사들인 약 일주일 뒤 신주 총 500만 달러 어치를 발행해 주당 8달러에 팔겠다는 안을 내놓기도 했다. 사우디PIF의 매입 추정가보다 훨씬 낮은 금액이다.
그러나 현지 언론들은 사우디PIF가 단순히 차익을 내려는 목적보다는 레저·관광업에서 발을 넓히기 위해 관련 분야 기업 저가매수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나라 실세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비전2030’이라는 대규모 경제 개혁 프로젝트를 벌이고 있다. 석유에만 의존하는 사우디 경제 구조를 바꾸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관광·레저산업을 대거 키우는게 목표다.
이 프로젝트에서 사우디 PIF는 자금을 대는 주요 통로를 맡고 있다. PIF가 굴리는 자산은 3000억 달러(약 366조원)가 넘는다. 우버나 테슬라 등 글로벌 신사업을 비롯해 호텔·관광업, 레저스포츠, 엔터테인먼트 분야 등에 주로 투자한다. 올해 들어선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구간 뉴캐슬 유나이티드를 지분 80%를 인수하기로 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