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한마디에 관련주 요동…'한국형 뉴딜'이 뭐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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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각 부처들은) 대규모 국가프로젝트로서 이른바 ‘한국판 뉴딜’을 추진할 기획단을 신속히 준비해주기 바란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2일 열린 제5차 비상경제회의에서 90조원 규모의 고용·안정 대책을 발표하며 이렇게 말한 직후, 건설·시멘트 관련주 주가가 치솟기 시작했다. 사회간접자본(SOC) 관련 정부지출이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감이 반영돼서다. 이날 삼표시멘트는 가격 상승 제한폭인 865원(29.88%)까지 오른 3760원에 거래를 마쳤고, 고려시멘트도 29.85% 상승한 3415원으로 올라 상한가를 기록했다.급등했던 건설·시멘트주는 다음날 대부분 상승폭을 반납했다. 삼표시멘트는 전일 대비 7.71% 하락했고, 고려시멘트도 전날과 동일한 종가에 거래를 마쳤다. 청와대가 “한국형 뉴딜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종식 이후 변화된 사회)에 걸맞는 디지털 일자리를 강조한 것”이라는 설명을 내놓으면서다. 대신 오른 건 IT 관련주 주가였다.
◆한국형 뉴딜이 뭐길래…앞다퉈 “우리 사업이 우선”
이런 촌극이 벌어지는 근본 원인은 ‘한국형 뉴딜’이 정확히 무엇인지 아무도 알 수 없다는 데 있다. 한국형 뉴딜이 아직 구상 단계에 머물러 있는 정책이라서다. 정부 관계자는 “한국형 뉴딜은 아직 종합적인 경제정책이 아닌 큰 흐름의 정책방향으로 보는 게 맞는다”며 “코로나19의 경제 충격을 수습하는 단기 대책이 마무리된 후 본격적으로 세부 정책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아직 구체화되지 않은 정책이라는 점 때문에 각 산업계는 앞다퉈 “한국형 뉴딜에 우리 산업을 포함시켜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수주전을 방불케 할 정도로 열기가 뜨겁다. 건설업이 대표적이다. 건설협회는 26일 “건설업은 국내총생산(GDP)의 15%를 차지하는 데다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았다”며 “내년 SOC 예산을 5조 늘려 건설업을 한국형 뉴딜의 중심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정부에 건의했다. 태양광발전 등 신재생에너지 업계를 비롯해 다른 산업계에서도 이 같은 성명 발표를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지방자치단체와 정부 부처까지도 가세하면서 한국형 뉴딜의 실체는 더 알아보기 힘들게 됐다. 포항시는 지난 27일 “한국형 뉴딜에 철강업을 포함시켜 달라”는 성명서를 냈다. 포항과 전남 광양, 충남 당진 등 철강 도시들의 지역내총생산(GRDP) 평균 증가율이 해마다 감소해 전국 최하위권을 맴돌고 있다는 게 근거였다. 같은 날 김연철 통일부 장관은 “남북철도 연결은 한국판 뉴딜”이라고 했다.
◆"한국형 뉴딜, 혁신성장+대규모 재정투입"한국형 뉴딜이 무엇인지 현 시점에서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정부 고위 관계자들의 발언과 정책 기조 등을 종합하면 내용을 대략 예상할 수는 있다. 관가 안팎에서 예상하는 한국형 뉴딜은 ‘대규모 재정 투입을 통한 신산업 일자리 창출 및 경기부양’으로 요약된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기존에 추진하던 혁신성장 정책과 맥락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며 “다만 재정을 대규모로 투입하는 등 추진 의지가 훨씬 강력하다는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근거는 청와대와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발언이다. 지난 26일 청와대 관계자는 “(한국형 뉴딜 사업은) 새로운 과학기술 분야에 상당히 역점을 둘 것으로 예상되지만 범정부적 역량을 모아야 하기 때문에 과학기술정보통신부보다는 경제부총리가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산업 분야를 중점으로 정책을 짜되 건설 등 기존 분야를 배제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홍 부총리는 대통령 발언이 나왔던 지난 22일 몇 가지 예시를 들었다. 그는 “디지털 뉴딜을 통한 디지털 국가로의 전환, SOC뉴딜을 통한 경기부양, 사회적 뉴딜을 통한 사회안전망 강화 등이 포함될 전망”이라고 설명했다.
각 산업계에서 구체적으로 거론되는 사업의 면면은 이렇다. 디지털뉴딜 부문에서는 청년 IT역량 교육·제조업 등 종사자에 대한 직업전환교육·5G 통신망 등 디지털 SOC 투자 확대가 유력하다. 그린 뉴딜에서는 미세먼지 저감,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투자를 늘리는 방안이 거론된다. SOC뉴딜에서는 생활SOC(편의시설) 중심의 토목사업 투자가, 일자리 뉴딜에서는 사회서비스 분야를 중심으로 한 공공부문 일자리 확대 정책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사회 뉴딜에서는 특수고용노동자 등을 고용안전망으로 편입하고, 고령층에 대한 복지를 늘리는 정책이 나올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주된 정책 수단은 재정 투입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세제도 신산업 분야 기업들이 고용을 늘리거나 관련 투자를 하는 데 세액공제를 확대해주는 등의 방식으로 이를 뒷받침할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정부가 ‘확장 재정’을 위해 예비타당성조사(예타) 문턱을 낮추고 공공기관 예타 기간을 단축하는 등 이때까지 추진해온 정책들을 더욱 강화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효과는 미지수…“돈만 쓰고 효과 미미할 수도”
뉴딜 정책은 1929년 발생한 경제 대공황에 대처하기 위해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이 1933년부터 1938년까지 내놓은 일련의 공공 일자리 확대 및 고용 복지 확대 정책을 뜻한다. 뉴딜 정책 이후 미국 경기가 회복되면서 각국에서는 이를 벤치마킹한 정책을 수없이 내놨다. 세부 내용은 달랐지만 ‘대규모 재정 투입을 통한 경기 부양’이라는 점은 모두 같았다.
한국 정부도 대규모 경기부양 정책에 ‘뉴딜’이란 이름을 즐겨 붙였다. 노무현 정부는 2005년 성장률 저하를 막기 위한 ‘한국판 뉴딜’을, 이명박 대통령은 ‘중산층 국가를 위한 휴먼 뉴딜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박근혜 정부는 대선 후보 시절 공약으로 과학기술과 IT를 농업, 서비스업 등 산업 전반에 접목해 새로운 시장과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전략인 ‘스마트 뉴딜’을 발표했다. 하지만 앞선 뉴딜 정책들을 아직까지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다. 별 효과가 없었기 때문이다.경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번 ‘한국판 뉴딜’도 당장 큰 효과를 거두기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한 민간경제연구소 관계자는 “미국 뉴딜정책의 핵심은 대규모 토목사업을 통해 두고두고 사용할 수 있는 사회 인프라를 건설하면서 고용을 대거 창출하는 것”이라며 “IT산업은 건설업에 비해 고용효과도 상대적으로 낮아 경기부양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IT분야 투자는 실패하면 SOC와는 달리 유형 자산이 남지 않는다는 점도 단점으로 지적된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2일 열린 제5차 비상경제회의에서 90조원 규모의 고용·안정 대책을 발표하며 이렇게 말한 직후, 건설·시멘트 관련주 주가가 치솟기 시작했다. 사회간접자본(SOC) 관련 정부지출이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감이 반영돼서다. 이날 삼표시멘트는 가격 상승 제한폭인 865원(29.88%)까지 오른 3760원에 거래를 마쳤고, 고려시멘트도 29.85% 상승한 3415원으로 올라 상한가를 기록했다.급등했던 건설·시멘트주는 다음날 대부분 상승폭을 반납했다. 삼표시멘트는 전일 대비 7.71% 하락했고, 고려시멘트도 전날과 동일한 종가에 거래를 마쳤다. 청와대가 “한국형 뉴딜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종식 이후 변화된 사회)에 걸맞는 디지털 일자리를 강조한 것”이라는 설명을 내놓으면서다. 대신 오른 건 IT 관련주 주가였다.
◆한국형 뉴딜이 뭐길래…앞다퉈 “우리 사업이 우선”
이런 촌극이 벌어지는 근본 원인은 ‘한국형 뉴딜’이 정확히 무엇인지 아무도 알 수 없다는 데 있다. 한국형 뉴딜이 아직 구상 단계에 머물러 있는 정책이라서다. 정부 관계자는 “한국형 뉴딜은 아직 종합적인 경제정책이 아닌 큰 흐름의 정책방향으로 보는 게 맞는다”며 “코로나19의 경제 충격을 수습하는 단기 대책이 마무리된 후 본격적으로 세부 정책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아직 구체화되지 않은 정책이라는 점 때문에 각 산업계는 앞다퉈 “한국형 뉴딜에 우리 산업을 포함시켜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수주전을 방불케 할 정도로 열기가 뜨겁다. 건설업이 대표적이다. 건설협회는 26일 “건설업은 국내총생산(GDP)의 15%를 차지하는 데다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았다”며 “내년 SOC 예산을 5조 늘려 건설업을 한국형 뉴딜의 중심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정부에 건의했다. 태양광발전 등 신재생에너지 업계를 비롯해 다른 산업계에서도 이 같은 성명 발표를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지방자치단체와 정부 부처까지도 가세하면서 한국형 뉴딜의 실체는 더 알아보기 힘들게 됐다. 포항시는 지난 27일 “한국형 뉴딜에 철강업을 포함시켜 달라”는 성명서를 냈다. 포항과 전남 광양, 충남 당진 등 철강 도시들의 지역내총생산(GRDP) 평균 증가율이 해마다 감소해 전국 최하위권을 맴돌고 있다는 게 근거였다. 같은 날 김연철 통일부 장관은 “남북철도 연결은 한국판 뉴딜”이라고 했다.
◆"한국형 뉴딜, 혁신성장+대규모 재정투입"한국형 뉴딜이 무엇인지 현 시점에서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정부 고위 관계자들의 발언과 정책 기조 등을 종합하면 내용을 대략 예상할 수는 있다. 관가 안팎에서 예상하는 한국형 뉴딜은 ‘대규모 재정 투입을 통한 신산업 일자리 창출 및 경기부양’으로 요약된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기존에 추진하던 혁신성장 정책과 맥락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며 “다만 재정을 대규모로 투입하는 등 추진 의지가 훨씬 강력하다는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근거는 청와대와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발언이다. 지난 26일 청와대 관계자는 “(한국형 뉴딜 사업은) 새로운 과학기술 분야에 상당히 역점을 둘 것으로 예상되지만 범정부적 역량을 모아야 하기 때문에 과학기술정보통신부보다는 경제부총리가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산업 분야를 중점으로 정책을 짜되 건설 등 기존 분야를 배제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홍 부총리는 대통령 발언이 나왔던 지난 22일 몇 가지 예시를 들었다. 그는 “디지털 뉴딜을 통한 디지털 국가로의 전환, SOC뉴딜을 통한 경기부양, 사회적 뉴딜을 통한 사회안전망 강화 등이 포함될 전망”이라고 설명했다.
각 산업계에서 구체적으로 거론되는 사업의 면면은 이렇다. 디지털뉴딜 부문에서는 청년 IT역량 교육·제조업 등 종사자에 대한 직업전환교육·5G 통신망 등 디지털 SOC 투자 확대가 유력하다. 그린 뉴딜에서는 미세먼지 저감,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투자를 늘리는 방안이 거론된다. SOC뉴딜에서는 생활SOC(편의시설) 중심의 토목사업 투자가, 일자리 뉴딜에서는 사회서비스 분야를 중심으로 한 공공부문 일자리 확대 정책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사회 뉴딜에서는 특수고용노동자 등을 고용안전망으로 편입하고, 고령층에 대한 복지를 늘리는 정책이 나올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주된 정책 수단은 재정 투입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세제도 신산업 분야 기업들이 고용을 늘리거나 관련 투자를 하는 데 세액공제를 확대해주는 등의 방식으로 이를 뒷받침할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정부가 ‘확장 재정’을 위해 예비타당성조사(예타) 문턱을 낮추고 공공기관 예타 기간을 단축하는 등 이때까지 추진해온 정책들을 더욱 강화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효과는 미지수…“돈만 쓰고 효과 미미할 수도”
뉴딜 정책은 1929년 발생한 경제 대공황에 대처하기 위해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이 1933년부터 1938년까지 내놓은 일련의 공공 일자리 확대 및 고용 복지 확대 정책을 뜻한다. 뉴딜 정책 이후 미국 경기가 회복되면서 각국에서는 이를 벤치마킹한 정책을 수없이 내놨다. 세부 내용은 달랐지만 ‘대규모 재정 투입을 통한 경기 부양’이라는 점은 모두 같았다.
한국 정부도 대규모 경기부양 정책에 ‘뉴딜’이란 이름을 즐겨 붙였다. 노무현 정부는 2005년 성장률 저하를 막기 위한 ‘한국판 뉴딜’을, 이명박 대통령은 ‘중산층 국가를 위한 휴먼 뉴딜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박근혜 정부는 대선 후보 시절 공약으로 과학기술과 IT를 농업, 서비스업 등 산업 전반에 접목해 새로운 시장과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전략인 ‘스마트 뉴딜’을 발표했다. 하지만 앞선 뉴딜 정책들을 아직까지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다. 별 효과가 없었기 때문이다.경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번 ‘한국판 뉴딜’도 당장 큰 효과를 거두기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한 민간경제연구소 관계자는 “미국 뉴딜정책의 핵심은 대규모 토목사업을 통해 두고두고 사용할 수 있는 사회 인프라를 건설하면서 고용을 대거 창출하는 것”이라며 “IT산업은 건설업에 비해 고용효과도 상대적으로 낮아 경기부양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IT분야 투자는 실패하면 SOC와는 달리 유형 자산이 남지 않는다는 점도 단점으로 지적된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