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주요대학 '정시 40%' 조기달성 성과…공정성 강화는 물음표

정시 확대 대상 16곳 중 9곳이 1년 일찍 40% 실현…고려대는 2배로 늘려
대학들 "자율성 침해" 반발…"학종보다 수능이 더 불공정" 우려도 여전
이른바 '상위권 대학'으로 불리는 서울 소재 인기 대학들이 2022학년도 대입에서 정시모집 비율을 30∼40% 수준으로 늘리는 이유는 교육부의 '대입 공정성 강화' 조처 때문이다.29일 교육계에 따르면 교육부는 지난해 11월 대입 공정성 강화 방안을 내놓으면서 "학생부종합전형(학종) 등 특정 전형 비율이 과도하게 높은 서울 소재 16개 대학의 정시 비율을 2023학년도까지 40% 이상으로 상향 조정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교육부는 이들 대학의 정시 확대가 2022학년도에 최대한 조기 달성되도록 유도하겠다고 예고했다.

대입 공정성 강화 방안 발표는 한 언론사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딸의 입시 비리 의혹을 보도한 지 100일 만에 이뤄졌다.학종 등의 수시모집 전형이 불투명하고 불공정하다는 여론의 분노를 정부가 수용한 것으로 평가됐다.
건국대·경희대·고려대·광운대·동국대·서강대·서울대·서울시립대·서울여대·성균관대·숙명여대·숭실대·연세대·중앙대·한국외대·한양대 등 16개 대학이 정시 확대 대상이 됐다.

학종과 논술로 45% 이상을 뽑아 '전형 비율이 불균형하다'는 이유였다.대학 입시 전형은 각 대학이 자율적으로 설계한다.

이 때문에 16개 대학이 교육부의 정시 확대 권고에 따르지 않을 우려도 있었다.

대학은 학종 등 수시모집을 선호한다.한 학생이 특정 대학·학과에 얼마나 진학하고 싶은지를 지원 서류와 면접 등을 통해 면밀히 살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중심의 정시모집은 '성적 줄 세우기'라 비(非)교육적인 데다가 애교심도 덜해서 반수생·재수생이 많다는 게 대학들 주장이다.

한날한시에 같은 시험을 치르는 수능이 더 공정하다는 다수 여론과 반대되는 경향이다.

정시 확대 대상으로 지목된 16개 대학의 올해(2021학년도) 대입을 보면, 학종 비율이 평균 45.6%고 정시 비율이 평균 29.5%다.

그런데도 16곳 중 9곳이 교육부 권고에 따라 2022학년도에 정시 비율을 40% 이상으로 늘리기로 했다.

정시 30% 이상은 16곳 모두 달성했다.

정시 비율을 10∼20%포인트 이상 급격히 늘리기로 한 대학도 있다.

고려대의 경우 2021학년도 정시 비율이 18.4%인데 2022학년도에 40.1%로 늘리기로 했다.

1년 만에 정시를 두 배 이상으로 늘리는 것이다.

경희대(25.2%→37.0%), 동국대(31.2%→40.0%), 성균관대(31.0%→39.4%), 연세대(30.7%→40.1%), 한양대(29.6%→40.1%) 등도 정시를 1년 만에 10%포인트가량 늘리기로 했다.

대입에 큰 영향을 끼치는 서울대 역시 정시 40%를 조기 달성하지는 않았지만, 정시 비율을 올해 21.9%에서 내년 30.1%로 8.2%포인트 늘리기로 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16개 대학의 정시 상향 목표를 어느 정도 조기 달성했다고 보고 있으며, 2023학년도에 나머지 대학도 40%에 맞출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다만 대학들이 정말 '자율적'으로 정시 비율을 늘렸다고 보기는 어렵다.

교육부가 대표적인 대학 재정지원사업으로 꼽히는 '고교교육 기여대학 지원사업'으로 정시 확대를 유도했기 때문이다.

고교교육 기여대학 지원사업은 대입 전형을 합리적으로 운영해 고교 교육 발전에 기여한다고 평가되는 대학에 입학사정관 인건비, 대입 전형 연구비 등을 지원해주는 사업이다.

70여개교에 700억원 가까이 지원하는 큰 사업이기 때문에 주요 대학은 모두 참여하려고 노력한다.

교육부는 올해 고교교육 기여대학 지원사업 참여에 '정시 확대'를 필수 조건으로 걸었다.

사업에 지원하려면 2022학년도까지 수능 위주 전형을 30% 이상으로 늘릴 계획을 제출하도록 했다.

또 '정시 40%' 대상이 된 16개 대학은 정시를 2023학년도까지 40%로 늘리겠다는 확약서를 제출하도록 했다.

서울대를 포함해 16개 대학이 모두 확약서를 내고 올해 고교교육 기여대학 지원사업에 지원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때문에 대학가에서는 "대학 자율에 맡겨져야 할 대입이 언제까지 교육부 재정지원사업에 휘둘려야 하느냐"는 불만이 나온다.

한 사립대 입학처장은 "조국 사태는 10여년 전 입학사정관제가 처음 도입됐을 때 횡행했던 문제 중 하나였고, 이후 학종이 자리 잡으면서 비리 문제는 거의 사라졌다"면서 "학종 비리 때문에 정시를 늘리니 빈대 잡겠다고 초가삼간 태운 격"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입시 전문가들은 2023학년도에 주요 대학이 정시를 40%로 늘리면 수시에서 이월되는 인원 등을 고려했을 때 사실상 2023학년도부터 '정·수시 반반' 시대가 열린다고 예상한다.

교육부 관계자 역시 "4대6이나 5대5 등 특정 비율을 정부가 따로 권고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과거 학종 비율이 다소 높았는데, 전형 간 비율을 유사하게 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수능이 학종보다 더 공정한지에 대한 물음표는 여전히 남아있다.

상당수 교육학자는 "수능이 한날한시에 똑같은 시험을 치른다는 점에서 일견 더 공정해 보이지만, 획일적 일제고사는 부모 소득이 높고 사교육을 더 받을수록 유리하기 때문에 기회의 형평성으로 보면 더 불공정하다"는 견해를 제시한다.전국진로진학상담교사협의회 등 교사단체들은 지난해 정시 확대가 발표되자 성명서를 내고 "전국 모든 초중고를 참담한 수능 배치표 체제로 되돌리는 명백한 오판"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