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유국' 베네수엘라의 비극 출발점도 국가부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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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어가는 '나라 곳간'먹을 것을 구하기 힘들어 국민 평균 체중이 1년 만에 11㎏ 줄었다. 인구 중 10%(330만 명)는 살기 위해 나라를 떠났다. 산유국으로 한때 중남미에서 가장 넉넉한 살림을 자랑했던 베네수엘라에서 지난 몇 년 동안에 발생한 일이다. 1930년대만 하더라도 세계 5대 경제강국이었던 아르헨티나는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수차례 구제금융을 받는 국가로 추락했다. 모두 나랏돈을 펑펑 쓰다 생긴 일이다.
국민 평균체중이
1년새 11㎏ 줄어든 나라
무분별한 재정 지출로 ‘빚더미’베네수엘라 경제 파탄의 직접적 원인은 2010년대 들어 국제 유가의 급락이다. 올 들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세계경제를 강타하면서 국제 유가가 선물시장에서 마이너스로까지 급락하는 사태가 발생하는 등 산유국들의 어려움은 더욱 가중될 것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하지만 베네수엘라 경제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국가 채무 관리를 잘못한 탓이 크다. 주력산업인 석유산업의 침체로 정부 수입이 급격히 줄어들면 세금을 인상하고 복지 혜택을 줄이는 등 일시적인 긴축 재정을 택해야 하는데 베네수엘라는 정반대의 길로 갔다. 포퓰리즘(대중인기 영합주의) 정책을 유지하며 되레 돈을 더 풀었다. 석유자원을 국유화한 뒤 석유 판매수익을 토대로 서민과 빈곤층에 무상 혹은 낮은 가격으로 주거, 의료, 교육 등의 복지를 제공했다.
단기적인 소득 증가에 힘입어 처음엔 빈곤층이 줄고 국민소득이 높아지는 듯했다. 하지만 곧 한계가 드러났다. 2013년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이 취임한 후 베네수엘라 경제 규모는 3분의 1 토막이 났다. 가격 규제로 기업 활동이 어려워지고, 복지비용 등 공공지출이 급증하면서 적자 재정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그나마 고유가 때는 사실상 유일한 수출품인 석유자원을 가지고 버틸 수 있었지만, 유가 하락이 장기화되고 장기간 석유산업 투자 부실로 산업 경쟁력을 잃으면서 이마저도 어려워졌다. 베네수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은 20%대로 치솟았다.
국제통화기금(IMF)의 명목 GDP 통계를 보면 마두로 집권 전인 2012년 3315억달러에서 2018년엔 963억달러까지 급감했다. 2011년 1만238달러였던 1인당 국내총생산도 2018년엔 3168달러로 쪼그라들었다. 복지 지출이 과도하게 늘어나면서 베네수엘라 통화(볼리바)가치는 가파르게 하락했다. 2018년 베네수엘라 물가상승률은 130만%에 달했다.
‘구제금융’의 대명사 된 아르헨티나아르헨티나는 1930년대만 하더라도 세계 5대 경제강국 중 하나였다. 넓은 영토를 기반으로 한 목축업과 농업으로 세계에서 손꼽히는 부국이었다. 하지만 1960년대와 1980년대 연거푸 일어났던 군사쿠데타로 불안정한 정권교체가 거듭됐고, 노동자들의 강력한 지지로 정권을 잡은 페론정권의 무분별한 복지 정책 확대로 나라 곳간이 비어가면서 세계 4대 채무국으로 전락하는 수모를 겪었다. 아르헨티나는 ‘IMF 구제금융’의 대명사가 되다시피 한 나라가 됐다.
관광·해운업 국가인 그리스도 공무원 조직 및 연금 확대, 퍼주기식 복지정책으로 누적된 재정위기가 불거지면서 2010~2018년 IMF 유럽중앙은행(ECB)으로부터 총 3100억유로(약 415조원)의 구제금융을 받았다. 청년실업률은 한때 50%를 넘었고, 그나마 일자리를 얻은 청년들도 저임금에 시달렸다. 지난해 기준 그리스의 최저임금은 한국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해운강국 그리스를 몰락시킨 것은 결국 나랏빚, 즉 재정적자였다.
경제 악화되도 복지축소 어려워국가 채무 위기는 한 나라의 문제가 아니다. 돈을 빌린 나라가 채무 불이행(디폴트)에 빠지면 채권국과 교역국이 덩달아 휘청이고 글로벌 경제 지표가 하락하면서 경제위기가 확산된다. 2012년 유럽 재정 위기가 대표적이다. 그리스·포르투갈·이탈리아·스페인(PIGS) 등이 만성적인 재정적자에 시달리다 국가 채무가 급증해 금융위기가 왔고, 유럽연합(EU) 결속까지 위협했다.
나라의 곳간(재정)이 든든해야 그 나라의 영속성이 보장된다. 정치권이 유권자들의 표만 의식해 선심성 복지정책을 펴면 재정이 악화되고 국가 빚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복지라는 명목으로 푼 돈은 경제 상황이 악화돼도 다시 거둬들이기 어렵다. 선심성 정책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다. 베네수엘라·아르헨티나·그리스는 ‘포퓰리즘 후유증’을 앓고 있는 대표적 국가다.
하지만 과다한 국가 빚으로부터 자유로운 나라는 없다. 균형 있고 합리적으로 나랏돈을 푸는 것은 국가의 역할이지만 ‘퍼주기식’ 정책은 삼가야 한다.
신동열 한경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shins@hankyung.com
NIE 포인트
① 베네수엘라 아르헨티나가 경제위기에 처한 이유는 무엇일까.② 적정한 국가 부채를 유지·관리하려면 어떤 정책이 필요할까.
③ 포퓰리즘(대중인기 영합주의) 정책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