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간 힘겨루기에서 부산 기장군 판정승…'해체 셈법' 더 복잡해진 고리1호기

사진=연합뉴스
국내 첫 원전해체 사례가 될 부산 기장군 고리1호기 해체 절차가 '고차방정식'으로 더욱 복잡해질 전망이다. 해체계획 수립을 위한 주민 의견수렴을 도맡을 '컨트롤타워' 자리가 없어지게 돼서다.

30일 원자력안전위원회에 따르면 고리1호기 등 원전 해체계획서 의견수렴 과정에서 '주관' 지방자치단체를 없애는 내용의 원자력안전법 시행령 개정안이 5월 중 국무회의를 통과할 전망이다.원안위 관계자는 "법제처 심사는 이미 끝났고 다음달 중 국무회의에 오를 예정"이라며 "통과 즉시 법 시행에 들어간다"고 설명했다.

시행령 개정으로 가장 크게 달라지는 점은 국내에서 원전을 해체할 때 지역주민 의견수렴 과정이 '고차방정식'으로 변하게 된다는 점이다. 기존에는 원전 인근 지역들 중 가장 면적이 큰 곳을 주관 지자체로 정했다. 이 지자체가 해체계획서에 대한 각 지자체의 주민 의견수렴 과정을 조율하는 역할을 맡는다.

고리1호기의 경우 울산 남·중·동·북구·울주군, 경남 양산시, 부산 금정·해운대구·기장군 등 총 9개 기초지자체의 의견수렴을 진행해야 한다. 주관 지자체는 울산 울주군이 된다.고리1호기 영구정지 이후 주관 지자체 자리를 두고 울산 울주군과 부산 기장군 간 갈등을 빚었다. 기장군은 "고리1호기의 행정구역은 기장군인 만큼 우리가 주관 지자체가 돼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기장군 관계자들이 서울 원안위 사무실을 방문해 “주관 지자체가 울주군으로 정해지면 지역 의견이 왜곡되거나 반영되지 않을 수 있다”고 항의하기도 했다.

이에 대한 원안위의 해법은 주관 지자체 개념 자체를 없애버리는 것이다. 원안위 관계자는 "기존의 법도 주관 지자체 한 곳의 의견만 듣는 게 아니라 관련 지역 모두 의견수렴을 하는데 불필요한 오해를 낳았다"며 개정 이유를 설명했다.

사업자인 한국수력원자력은 난색을 표하고 있다. 한수원은 당초 지난해 주민 의견수렴을 위한 공청회를 마칠 예정이었으나 법령 정비가 이뤄지지 않아 현재까지 공청회 일정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절차까지 복잡해진 것이다. 한수원 관계자는 "과거 사례가 없다 보니 법령 개정에 따른 손익을 추정하기는 어렵다"면서도 “의견수렴 컨트롤타워가 없어지고 각 지자체와 직접 접촉해야 하다 보니 의견수렴 과정이 복잡해진 건 사실”이라고 했다. 시행령 개정을 위한 의견수렴 단계에서 한수원은 원안위 측에 "주관 지자체는 유지하되 그 기준을 고민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었다.

2032년 말까지 완료하기로 한 고리1호기 해체 계획에는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작년 말 산업통상자원부는 "한수원은 관련 법 개정이 완료되는 대로 주민의견을 수렴해 이를 반영한 최종해체계획서를 원안위에 2020년 6월까지 제출할 계획"이라고 설명했었다. 하지만 법 개정 작업이 예상보다 늦어진 데다가 의견수렴 과정이 복잡해지면서 상반기 중 최종해체계획서를 확정하는 건 쉽지 않을 전망이다.

한수원 관계자는 "법 개정이 완료된 뒤 바로 주민 공청회를 여는 것이 아니라, 각 지자체를 통해 초안을 공람하고 각종 요건을 갖춰야 주민공청회 일정을 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원전 해체를 위해서는 사용후핵연료를 빼내 보관할 시설이 필요한데 이는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의 공론화 작업에 달려 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