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 물류창고 화재 사망자 대부분 '일용직' 노동자였다

시신 훼손심해 사망자 38명 중 29명만 신원 확인
시공사 대표, 사고 현장 찾아 무릎 꿇고 사과
29일 오후 이천시 모가면의 한 물류창고 공사장 화재 현장에서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29일 경기 이천 물류창고 신축공사 현장 화재로 인한 사망자 38명의 대부분은 일용직 노동자였다. 외국인 근로자도 3명 포함됐다.

30일 경찰과 소방당국 등에 따르면 이날 화재로 인한 인명피해는 사망 38명, 중상 8명, 경상 2명으로 최종 집계됐다. 사망자 38명 중 신원이 확인된 29명 중 상당수가 전기·도장·설비 업체 등에서 고용한 일용직이었다. 중국인 1명, 카자흐스탄 2명 등 외국인 3명도 사망자에 포함됐다.경찰은 지문과 DNA 채취, 대조를 통해 이중으로 신원 확인 작업을 벌였다. 사망자의 시신은 대부분 훼손 정도가 심해 유족들도 신원을 확인하기 어려운 것으로 전해졌다. 신원 확인이 안 된 사망자 9명에 대해선 유전자를 채취,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신원 확인을 의뢰했다.

화재가 발생한 물류창고 신축공사 현장엔 총 190여 명의 근로자가 작업하고 있던 것으로 파악됐다. 공사 현장의 3개 건물 중 불이 난 B동에 근무하던 인원은 78명이었다.

경찰은 30일 오전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소방, 전기, 가스 분야 전문가 40여명과 1차 관계기관 합동 현장감식을 벌였다. 화재원인과 발화지점, 화재 전파 경로 등을 찾는데 주력했다. 지하2층 화물용 엘리베이터 부근에서 우레탄 살포 작업중 발생한 유증기가 건물 전체로 퍼진 상태에서 불꽃이 닿으면서 불이 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산업안전 당국은 지난해 5월부터 이 같은 재해를 우려, 경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안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해당 공사장은 지난해 5월, 올해 1월과 3월 등 세 차례에 걸쳐 화재위험(발생) 주의를 받았다. 그때마다 시공사 등은 안전성 확보대책이 담긴 유해·위험방지계획서를 제출하며 공사를 이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고가 사실상 ‘인재(人災)’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경찰은 공사업체 관계자, 부상자, 목격자 등을 상대로 화재 원인을 파악하는 한편 안전 규정 등을 제대로 지켰는지 조사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수사, 건축, 전기적 위반사항 등도 확인할 계획”이라고 했다. 화재 당시 비산방지커버와 소방 장비 등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도 알려졌다.

지난 29일 오후 1시32분쯤 경기 이천 모가면의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 신축공사장에서 난 불은 5시간여 만인 오후 6시42분쯤 완전히 꺼졌다. 이천시는 서희청소년문화센터에 합동 분향소를 설치하고 시신 수습, 장례일정 등을 유족과 협의하고 있다.해당 물류창고 시공사 ‘건우’의 이상섭 대표는 이날 오후 1시55분께 화재 현장 인근 ‘피해 가족 휴게실’이 마련된 모가실내체육관을 방문해 무릎을 꿇고 사과했다. 이 대표는 연신 “죄송하다”면서 흐느꼈다. 그는 “사과 말고 대책을 설명하라”는 유족들의 항의를 받다가 5분 만에 자리를 떠났다.

정지은 기자 je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