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年 3%대 금리가 어디냐"…회사채로 몰리는 개미들

A급이상 회사채 잇따라 완판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 닮았다
은행금리 3배 달하는 수익률에
그때도 개인들 9개월간 4조원 사
개인투자자들이 주식에 이어 회사채시장으로 몰리고 있다. 은행 예금금리가 사상 최저 수준까지 떨어진 데 비해 우량등급 회사채 수익률은 꾸준히 오르고 있어 낮은 위험 부담으로 비교적 높은 금리를 노리는 ‘스마트 개미’들이 뭉칫돈을 맡기고 있다. 전문가들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채권금리 급등기를 틈타 개인들이 회사채시장에 대거 참여했던 현상이 되풀이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회사채 사전청약 개인 가세로 ‘완판’30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지난 27일 KB금융지주의 3000억원 규모 영구채 사전청약에 두 배가 넘는 6560억원의 매수 주문이 접수됐다. 눈길을 끈 것은 전체 투자 수요의 77%인 5060억원이 개인에게 금융상품을 판매하는 각 증권사 소매판매팀을 통해 들어왔다는 점이다. 이번 영구채는 만기가 정해져 있지 않지만 KB금융이 5년 또는 10년 뒤 상환할 수 있는 조건이 붙어 있다. 은행 영구채는 조건에 따라 이자를 못 받을 수도 있고, 금융위원회로부터 부실금융사로 지정될 경우엔 원금을 모두 잃을 가능성도 있어 금리가 높은 편이다. KB금융은 최고 연 3.8%의 금리를 제시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3월 은행의 예금금리 평균은 연 1.27%다. KB금융의 기업 신용도는 ‘AAA’, 이번 영구채의 신용등급은 ‘AA-’다. 증권사 관계자는 “파산 가능성이 낮은 우량등급 채권에 투자하면서도 예금 금리의 약 세 배 수익을 기대한 개인들이 PB(프라이빗뱅킹) 영업점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매수 의사를 보였다”고 설명했다.

은행 금리에 만족하지 못하는 개인들은 AA급보다 아래인 A급 회사채로도 눈을 돌리고 있다. 3년물 450억원어치 회사채 발행을 위해 지난 27일 수요예측을 한 동아쏘시오홀딩스는 개인이 투자 수요의 절반을 받쳐준 덕분에 ‘완판’에 성공했다. 560억원의 매수 주문 중 280억원이 8개 증권사 리테일팀에서 들어왔다. 지원사격에 나선 산업은행(180억원)을 제외하면 이날 수요예측에 참여한 기관투자가는 산림조합중앙회(100억원)가 유일했다. 대한제당도 개인 매수세에 힘입어 회사채 목표량을 채웠다. 이 회사는 같은 날 진행한 수요예측에서 400억원의 매수 주문을 받아 계획한 금액을 맞췄다. 산업은행과 DB손해보험이 300억원을 받쳐준 가운데 개인들이 나머지 100억원을 책임졌다. 대한제당의 5년물 희망금리는 최고 연 3.4%다.

IB업계 관계자는 “지난달 기준금리가 한꺼번에 0.5%포인트 떨어진 이후 회사채의 투자 매력이 부각되고 있다”며 “이런 추세라면 A급보다 위험도가 높은 BBB급 회사채로도 수요세가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5월부터 정부의 비우량등급 회사채 지원이 본격 시작되면 투자심리가 풀려 BBB급을 찾는 개인이 늘 것이란 설명이다. 3월 4일 연 1.644%까지 떨어졌던 3년 만기 AA-등급 회사채 금리는 4월 말 연 2.218%까지 상승했다. BBB-등급 3년물은 연 8.456%에 달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기업 실적이 악화될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2008년 하반기 데자뷔

유통시장에서도 변화가 감지된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장외시장에서 개인의 회사채 순매수 규모는 4월 첫주 110억원에서 마지막주엔 401억원까지 늘었다. IB업계 관계자는 “기준금리가 연 1%선 아래로 떨어지자 개인들은 수익률 높은 확정금리상품에 더욱 갈증을 느끼고 있다”며 “최근 기업 신용위험 확대를 우려한 기관투자가들이 몸을 사리면서 회사채 금리가 빠르게 오르자 개인들의 투자 의욕에 불이 붙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상황과 비슷한 양상이 펼쳐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금투협회에 따르면 A등급 회사채 평균 금리가 연 7%를 웃돌았던 2008년 7월부터 2009년 3월까지 개인의 회사채 순매수 규모는 약 4조700억원으로 1년 전 같은 기간(1조3800억원)의 세 배가량으로 증가했다. 2008년 11월 A급과 BBB급 회사채 금리는 최고 연 9~11%까지 치솟았다. 당시 은행 정기예금 평균 금리는 연 3.3%였다. 증권사의 한 PB는 “회사채 금리가 은행 금리의 두 배를 넘어가면 개인의 관심이 크게 늘어나는 것이 과거 경험”이라며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엔 연 7%대의 A급 회사채가 큰 인기를 모았다”고 말했다.다만 손실 위험은 유의해야 한다. 2013년 금리가 연 7%를 웃돈 동양그룹 계열사 회사채를 사들였던 개인들은 회사가 존폐 위기에 몰리면서 밤잠을 설쳐야 했다. 당시 회사채시장에서 개인 순매수 ‘톱5’에 들었던 (주)동양과 동양시멘트는 유동성 위기로 결국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고금리에 이끌려 이 회사채를 샀던 개인들은 적잖은 금액을 날렸다.

김진성/이태호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