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시선] 두 '샤를 드골', 코로나19, 서구라는 이름의 환영

2차대전 후 프랑스를 강대국으로 재건한 드골, '쓸쓸한' 타계 50주년
핵항모 샤를 드골, 1조7천억원 들여 성능개선 직후 코로나19에 전력마비
서구민주주의 대표 강대국 미·영·불, '미지의 적' 습격에 휘청

# 올해는 프랑스의 군인·정치가 샤를 드골(1890~1970)의 타계 50주년이다. 그가 태어난 지는 130년, 나치 독일에 대한 결사 항전을 촉구한 BBC 연설을 한 지는 80년이 됐다.

샤를 드골은 어떤 인물인가.

1940년 군인으로서 조국이 나치의 진격에 허무하게 무너지는 것을 본 드골은 런던으로 건너가 윈스턴 처칠의 도움으로 항전을 이어갔다. 연합국 수장인 영국의 처칠, 미국의 루스벨트, 소련의 스탈린 사이에서 종종 패잔병 취급을 받으면서도 그는 늘 군복을 갖춰 입고 처칠이 마련해준 사무실로 출근해 전황판을 살폈다.

나치의 마수를 가까스로 벗어난 '자유 프랑스' 병력과 식민지 주둔군을 규합하고, 이념에 따라 복잡하게 분화한 프랑스의 지하 항전조직(레지스탕스)을 장 물랭을 보내 통합한 것도 드골이었다.
드골의 노력에 힘입어 프랑스는 해방 후 2차대전 승전국으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 됐다. 개헌으로 강력한 대통령 중심제를 채택한 프랑스 제5공화국은 드골의 리더십 아래 번영을 구가하는데, 특히 해방 후 1945년부터 1975년까지는 프랑스인들에게 '영광의 30년'(Les trente glorieuses)이라 불릴 만큼 자랑스러운 시기다.

마셜플랜의 도움으로 경제가 회생했고, 문학·철학·영화·패션 등 문화와 지식이 다시 꽃을 피웠으며, 전략핵무기까지 갖게 됐다.

미·소 대치에서 한 발짝 비켜서서 독자 외교 노선을 추진하고 패전국 독일을 포용하며 유럽 통합을 주도했다. 나치가 프랑스를 짓밟으며 유대인을 학살하는 것을 멀리서 지켜보며 절치부심했던 드골은 이렇게 '위대한 프랑스의 재건'이라는 오랜 꿈을 조금씩 이뤄갔다.

이런 드골도 말년에는 청년들이 기성세대에 대한 분노를 격렬히 표출한 68혁명(68학생운동) 당시 타도해야 할 낡은 기득권의 상징이 되는 수모를 겪는다.

그래도 타계 50년이 지난 지금 프랑스인들에게 드골은 정파를 초월해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남아있다.

장군을 뜻하는 '제네랄'이라는 명사는 그를 지칭할 때 항상 따라붙는 영예의 칭호다.

하지만 지금 프랑스는 이토록 자랑스러운 드골의 사후 50년을 기릴 여력이 없다.

그를 기억하는 각종 행사와 생가·전적지 탐방 등의 프로그램은 무기한 연기되거나 취소됐다.

전국에 봉쇄령을 내린 지 6주가 지났어도 여전히 매일 400명 가까운 사람들이 미지의 적의 공격에 스러지고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코로나19 사망자 수는 2만5천명에 육박한다.

# 항공모함 샤를 드골은 전략핵잠수함들과 함께 프랑스의 핵억지 수단이다.

함재기인 전천후 전폭기 라팔은 대통령의 명령이 떨어지면 핵탄두 미사일을 싣고 대양에서 출격한다.

이 전략무기에 프랑스를 나치로부터 해방시켜 강대국으로 재건한 드골의 이름을 붙인 것은 프랑스로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샤를 드골은 최근 2년간 13억유로(1조7천억원)를 들여 새 핵연료를 주입하고 전투장비를 대대적으로 개선했다.

드골을 추앙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작년 11월 함상에서 만 하루를 체류하며 실전 재배치 태세를 직접 점검하기도 했다.

그렇게 다시 지중해로 나가 테러집단 이슬람국가(IS)에 최첨단 전폭기로 폭탄을 쏟아부은 샤를 드골도 신종 바이러스의 출현에 손도 쓰지 못하고 무너져내렸다.

고립무원의 바다에서 감염원이 누군지도 모른 채 1천명이 넘는 장병이 코로나19에 감염되면서 전투력이 마비된 것이다.

앞서 샤를 드골의 두 배 덩치인 미 핵항모 시어도어 루스벨트 역시 코로나19로 작전을 중단해 이번 일은 두 강대국 핵항모의 '굴욕'으로 역사에 남게 됐다.
# 미국, 프랑스, 영국 세 나라는 초기 방역에 실패해 막대한 대가를 치르며 고전 중이다.

핵보유국인 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 중 서구민주주의 진영의 대표국가들이라 이 상황이 의미하는 바가 적지 않다.

이들이 중국과 한국에서 코로나19가 확산하던 초기에 '강 건너 불구경' 하듯이 방심하다가 실기(失期)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기민하게 대처하지 않은 배경에는 한때 '서구 열강'으로 불리던 이들 나라의 아시아에 대한 오랜 편견도 작용했을 것이다.

소수의 일탈이기는 하지만, 아시아인에 대한 인종차별과 언어·물리적 폭력 같은 추한 모습도 여전히 목격된다.

서구우월주의와 인종주의라는 편견, 전문가와 과학에 대한 불신, 대중의 불안에 편승하는 무책임한 정치세력 따위는 이들 국가에서 여전히 코로나바이러스의 숙주가 되고 있다.

새로운 종류의 이 세계대전에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 생계를 지켜주는 것은 핵이나 항공모함 같은 값비싼 무기가 아니었다.

유능하고 헌신적인 의료진, 견고한 공공의료체계, 스마트한 방역당국과 이를 뒷받침하는 탄탄한 정부 조직, 과학을 신뢰하고 사회적 거리 두기에 자발적으로 나서는 성숙한 시민의식 같은 것이 가족과 이웃을 살리는 것을 한국인들은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지 않았나.
우리는 오랫동안 이런 것들이 소위 선진국인 미국이나 서유럽의 전유물인 줄로만 알았던 게 사실이다.

합리주의와 경험론을 태동시켜 과학혁명을 이루고 산업화와 민주주의를 처음 이룩한 '근대'의 선구자들이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했던 인식이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이런 찬란한 과거를 무색하게 한다.

전 세계가 초연결된 개방경제 시대에 바이러스가 곧 들이닥칠 것이라는 예측도 하지 못하고서는 뒤늦게 국민의 기본권인 이동과 여행의 자유를 극단적으로 제한해 버렸다.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코로나19와의 전쟁은 승자는 없고 패자만 있는 그런 싸움이라 자만은 금물이다.

그래도 이 사태가 끝나면 우리는 떠들썩하게 승리를 선언하지 않더라도, 응어리처럼 붙어있던 그 단단한 '서구 콤플렉스'를 어느 정도 털어낼 수 있지 않을까. '영광의 30년'을 기억하는 프랑스인들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두 '샤를 드골'의 과거와 현재는 극동의 작은 분단국이었던 우리에게 선진국이란, 강대국이란 무엇인가라는 낡은 질문을 다시 던지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