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정부, 시위대에 '반테러 조례' 적용 추진…야당 반발

'재산 동결' 등 탄압 예고에 유엔 인권보고관 "우려" 표명
노동절 집회 등 재야단체 대규모 집회 잇따라 긴장 고조
홍콩 정부가 '반테러 조례'를 적용해 시위대를 탄압할 것을 예고하자 야당과 시민단체가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1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빈과일보 등에 따르면 존 리 홍콩 치안장관은 SCMP와 인터뷰에서 홍콩 내 자생적인 테러 위협을 막기 위해 '반테러 조례' 적용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리 장관은 "홍콩 내 테러 위협이 갈수록 커지고 있으며,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유엔 주도로 제정된 법규(반테러 조례)를 적용해 관련 조직에 대한 '산소' 공급을 차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2001년 미국에서 9·11 테러가 발생한 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각국이 극단주의 조직에 맞설 수 있도록 관련 법규를 제정할 것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으며, 홍콩 정부도 '유엔 조례'로 불리는 반테러 조례를 만들었다. 리 장관은 지난해 6월부터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 반대 시위가 이어진 후 홍콩 경찰이 5건의 총기를 압수하고 10여 건의 폭탄테러 모의 사건을 적발한 점을 지적하면서 테러 대응 경보를 상향 조정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시위대를 겨냥해 "이들은 테러리스트에 '산소'를 공급하는 사람들이며, 잠재적 테러리스트를 진압하려는 경찰의 행동을 방해하는 것은 심각한 행위"라며 홍콩 시민들이 급진적 행동을 비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어 시위대의 배후에 특정 조직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이들의 행동과 전략을 보면 단순히 거리로 뛰쳐나온 것이 아니라 이들을 조직하고 훈련하는 세력이 존재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리 장관은 '반테러 조례'를 적용해 테러리스트 조직을 강력하게 진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콩의 '반테러 조례'는 폭탄 제조 혐의로 기소된 사람에게 최고 종신형을 선고할 수 있도록 했으며, 테러리스트 혐의를 받는 사람의 재산은 동결할 수 있도록 했다.

리 장관은 "이러한 조처를 통해 테러리스트 조직에 대한 '산소' 공급을 차단하고 그 성장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며 "이는 대중이 사태의 심각성을 알도록 하는 교육 효과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홍콩 야당과 재야단체 등 범민주 진영은 '반테러 조례' 적용 추진을 강력하게 비판했다.

홍콩 재야단체인 민간인권전선의 지미 샴 대표는 "홍콩 정부는 유엔이 규정한 테러 활동과 전혀 상관없는 시위 활동에 대해 '테러'라는 오명을 씌운 후 홍콩을 중국 본토와 같은 감시와 통제, 언론 자유 탄압의 도시로 만들려고 한다"고 비난했다.

야당인 민주당은 "단순한 시위 참여자를 '테러리스트'로 규정하고 탄압하면 오히려 반감과 분노를 불러와 이들이 테러 활동에 동조하도록 만드는 역효과를 낼 수 있다"고 비판했다.

지난주 6명의 유엔 인권 특별보고관도 홍콩 정부에 보낸 서한을 통해 "반테러 조례의 테러 활동 규정은 너무 광범위하고 애매모호하다"며 "이를 악용해 반대 진영을 탄압하고 시위를 막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홍콩 정부의 '반테러 조례' 적용 추진은 재야단체의 대규모 시위 등이 예고된 상황에서 나온 것이어서 양측의 갈등과 충돌 또한 우려된다.

민주 진영에 속하는 노동단체 홍콩직공회연맹(CTU)은 경찰의 불허에도 불구하고 이날 노동절 집회를 강행하기로 했다.

다만 CTU는 홍콩 정부의 사회적 거리 두기 정책을 고려해 대규모 집회나 행진 대신 시내 곳곳에 30∼40개의 부스를 설치해 시민들에게 노조 가입 등을 권유하는 새로운 시위 방식을 적용하기로 했다.

홍콩 경찰은 이날 시내에 6천여 명의 병력을 배치해 시위에 강력하게 대응하기로 했다.

민간인권전선은 캐리 람(林鄭月娥) 홍콩 행정장관의 하야를 요구하면서 다음 달 10일 대규모 집회를 개최할 계획이다. 또 6월 4일 톈안먼(天安門) 시위 기념 집회, 7월 1일 주권반환일 집회 등 대규모 시위가 잇따를 전망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