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물류창고 대형화재] ② 따로 노는 제도와 현실

사고 숱하게 겪으며 제도 손질했지만 제대로 지켜지는 현장 거의 없어
"안전수칙 준수 분위기 조성이 중요…사고 책임 원청업체에 지워야"

'291명.'
고용노동부가 집계한 2009년 이래 10년간 화재로 숨진 근로자 수이다. 무려 38명의 사망자를 낸 경기 이천 물류창고 공사 현장 화재에 앞서 우리 사회는 숱한 대형화재를 겪으면서 많은 생명을 떠나보냈다.
그때마다 산업안전보건법 등 관련법이 개선되고, 현장에서의 안전수칙이 강화되는 등 제도 손질이 이뤄졌지만, 똑같은 사고는 해마다 반복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와 지자체, 관계기관이 관리·감독 등 제역할을 하지 못한 것은 물론 기본 안전수칙을 등한시하는 현장의 분위기가 화재 발생을 부채질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천 참사 하루 뒤인 지난달 30일 문재인 대통령은 긴급대책 회의를 열어 "우리 정부 들어 화재 안전 대책을 강화했는데 왜 현장에서는 작동되지 않았는지 살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번 정부 출범 이후 2017년 29명이 숨진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2018년 45명의 사망자가 나온 밀양 세종병원 화재 등 대형화재 참사가 있었고, 공사 현장에서 일어난 화재는 셀 수 없이 많았다.

이에 따라 대대적인 제도 개선이 이뤄져 지난 1월 16일 산업안전보건법(이하 산안법) 개정안이 시행됐다. 공사 현장의 화재와 관련해 보강된 주요 내용을 요약하면 ▲ 화재 감시자 지정·배치 대상 확대 ▲ 화기 작업 확인제 도입 ▲ 가연성 자재 등의 별도 보관·저장 ▲ 용접·용단 등의 화재 예방 조치 범위 확대 등이다.

새로운 법안은 마련됐지만, 이를 관리·감독해야 할 당국의 인력은 턱없이 부족한 데다 점검에 나선다고 해도 점검 시기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예컨대 공사 현장에 대한 점검의 경우 고용부 인력이 1년에 취약시기 3차례(동절기, 해빙기, 장마철 등)에 벌이는 것이 전부라고 한다. 이에 따라 앞으로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등의 관리·감독 기능을 더욱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나오고 있다.

경기도는 이천 참사를 계기로 일정 규모 이상의 공사 현장에 안전지킴이(상주 감시원)를 파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나섰다.

실질적인 화재 예방 관리가 부족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전문가들은 당국의 이같은 조처와는 별개로 공사 현장의 총괄 책임자인 시공사와 직접 일하는 근로자 모두 스스로 법령을 준수하는 문화를 만들어 가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이번 사고와 판박이인 2008년 1월 이천 냉동창고 화재 당시 사측은 오작동 시 작업에 불편이 초래될 수 있다는 이유로 스프링클러와 방화문 등을 수동으로 작동, 끔찍한 결과를 초래했다.

같은해 12월 서이천 물류센터 화재 때에도 작업 불편을 덜기 위해 수동조작으로 놔뒀다가 화재를 막지 못하는 등 현장의 안전불감증이 잇따랐다.

이효배 ㈜안전하는 사람들 대표는 "1군 건설사는 화재 감시자 배치 등 법률에 따른 여러 안전조처를 준수하고 있으나, 그 외 소규모 건설사 현장은 환경과 분위기 자체가 다른 것이 현실"이라며 "개선된 제도는 멋진 호랑이 그림을 그려놨으나, 실제 현장은 강아지 그림조차 그리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기본적인 안전수칙을 준수하는 분위기부터 조성해야 한다.

근로자 스스로 개인 보호구를 철저히 지참하는 등 기초를 튼튼히 해야 한다"면서 "관계 당국 또한 안전점검이 요식행위로 끝나지 않도록 현장경험이 풍부한 전문가가 담당 공무원을 철저히 교육할 필요가 있다"고 부연했다.

김동헌 재난안전원장은 "기본수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배경에는 제도가 있다"면서 "예를 들어 공사 현장의 근로자는 단 4시간의 건설기초교육을 한 차례만 받으면 평생 어느 현장에서든 일할 수 있는데, 이런 교육도 더욱 강화해야 하지 않겠나 싶다"고 전했다.

또 사고 후 모든 책임을 하청업체에 전가하는 일은 앞으로 없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원장은 "위험의 외주화는 반드시 방지돼야 한다"면서 "원청이 안전관리 계획이 담긴 시공 계획을 검토하고 현장에 적용한 만큼, 사고 발생 시 공사를 맡긴 이에게 더욱더 무거운 책임을 지워야 한다"고 밝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