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 트라우마에 "손이 벌벌"…고성 대피주민들 '불면의 밤'

천진·아야진 초교에 200여명 피신…"대피 안 하면 죽겠다 생각"
몸만 겨우 빠져나온 주민들 "매캐한 냄새·연기에 눈 못 뜰 정도"
"대피를 안 하면 안 될 것 같았습니다.바람도 너무 세고 불꽃이 막 날아다니니까 대피 안 하면 죽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지난해 봄 동해안을 덮친 대형산불 발생 이후 꼬박 1년 만에 1일 강원 고성지역에 들이닥친 큰불에 주민들은 할 말을 잃었다.

불과 1년 전 산불 이재민 임시거처로 사용됐던 고성군 천진초등학교 체육관에는 또다시 보금자리를 뒤로한 채 주민 161명이 모여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있었다.

김모(52·도원2리)씨는 "뒷산에서 불이 계속 타고 내려와 집으로 옮겨붙을 것 같아 부모님을 모시고 지갑과 통장만 든 채 급히 빠져나왔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김씨는 "뒷산은 벌겋게 타고 있었고, 연기와 냄새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심했다"고 혀를 내둘렀다.

1996년 고성산불과 2000년 동해안 산불 당시 다행히 피해는 없었다는 김씨네 가족은 "집이 제일 걱정이죠. 무사하진 않을 겁니다.

여기서 계속 있을 순 없는데 앞으로 어디서 먹고 자야 할지…"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김씨는 "부모님 건강도 안 좋으신데 여기 계속 있을 수 없고, 코로나19 때문에 사람들도 피해 다니는데 이렇게 모여 있는 상황에 대한 불안감도 든다"고 토로했다.

불이 시작된 도원리와 멀지 않은 학야리에 사는 함모(76)씨와 배모(69·여)씨 부부도 불안하긴 마찬가지였다.

1996년 고성산불 당시 집을 잃은 아픈 기억을 가진 배씨는 "손이 벌벌벌벌 떨려"라며 불안해했다.남편 함씨는 "매캐한 냄새에 연기가 가득 차서 눈을 못 뜰 정도였다"라며 "속초에서 아들들이 와서 겨우 빠져나왔다"고 말했다.

이어 "그때(1996년)도 지금도 그냥 사람만 나왔지. 오늘도 바람이 너무 많이 불더니 불이 났다"고 덧붙였다.

도원리, 학야리, 운봉리 등에서 피신한 주민 161명 대부분 몸만 겨우 빠져나온 채 초조하게 산불 관련 뉴스 등을 챙겨보았다.

산불 발생지역과 10여㎞ 떨어진 피신처까지는 이웃 또는 자식들의 차를 이용해 피신했다.

주민들은 자정이 넘은 시각에도 잠을 이루지 못한 채 집을 걱정하거나, 앞으로의 생활을 걱정하는 등 얼굴에 근심이 가득했다.

체육관 한편에는 대한적십자사에서 보내온 긴급구호 세트가 두껍게 쌓였다.

전모(80·여·운봉리)씨는 "불길은 못 봤으나 하늘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있었다"며 "산불이 벌써 몇 번짼지 모르겠다.

큰 불만 벌써 4번째"라며 씁쓸해했다.
주민과 관광객 등 56명이 대피한 아야진초교 체육관 역시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주민들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간격을 유지한 채 대피소에서 제공된 매트와 담요를 이용해 어렵게 눈을 붙였다.

교암1리에 사는 서상희(84·여)씨는 "하늘이 그냥 뿌옇게 변해 있고 냄새가 아주 말도 못 할 정도였다"고 설명했다.

서씨와 이웃인 윤정자(77·여)씨는 "남편은 몸이 불편해서 못 오고 손주들이 '상황이 급해지면 모시고 오겠다'며 지키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산불은 1일 오후 8시 21분께 고성군 토성면 도원리의 한 주택에서 시작됐다.

이 불로 주택 3채가 전소됐다.

현재까지 인명피해는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도원리·학야리·운봉리 등 330여세대 600여 명이 아야진 초교와 천진초교에 대피했다.

육군 22사단 사령부 1천여 명과 신병교육대 800여 명 등 장병 1천800여 명도 고성종합운동장과 속초종합운동장, 아야진초등학교로 대피한 상태다.소방당국도 화재 대응 단계를 1단계에서 2단계, 3단계로 차례로 격상하는 등 다른 시도 소방인력과 장비의 대거 지원을 요청하는 소방력 동원령을 발령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