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무대 같은 전시…정치무대를 비틀다

장종완 아라리오뮤지엄 개인전 '프롬프터'
정치무대라는 표현을 종종 쓴다. 여기서 무대는 활동 공간이나 분야를 뜻하지만, 치밀한 각본이 필요하고 상징적 요소가 가득한 정치 속성을 생각하면 실제 무대와 연결 지어도 무리가 없다.

정치인과 지도자들이 미디어와 대중에 노출될 때 그 공간은 하나의 무대가 된다.

대통령 집무실, 의회, 회담장 등은 장소부터 소품 하나하나까지 이데올로기를 반영한 상징으로 가득하다. 남북, 북미정상회담과 같은 국제정치 무대는 더 연극적이다.

종로구 원서동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에서 개막한 장종완 개인전 '프롬프터'는 한 편의 연극 같은 정치무대를 전시장에 재현했다.

연단에는 대형 연설대가 있다. 옆으로는 깃발이 늘어섰다.

연설대 위에는 꽃장식이, 앞면에는 화려한 동물 문양이 보인다.

앞쪽 바닥에는 발표 원고 등이 나오는 프롬프터가 설치됐다. 어느 국가 정상이 중요한 내용을 발표할 때나 볼 법한 웅장하고 격식 있는 분위기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뭔가 좀 이상하다.

깃발은 동물이 그려진 담요로 만들었다.

국기봉 부분에는 버섯, 사슴뿔 등이 있다.

식물들은 고급 화초가 아닌 플라스틱 모조품이고, 연설대 앞면에는 국가 상징물이나 엠블럼 대신 사자 그림이 삐뚤게 걸렸다.

회화, 설치, 영상 등 25점으로 구성된 하나의 연극무대 같은 작품이다.

국내 1세대 현대건축가 고(故) 김수근이 설계한 옛 공간사옥에 자리 잡은 아라리오뮤지엄 전시장은 한때 소극장으로 쓰였다.

전시장을 무대처럼 꾸민 작품이 더 극적으로 다가온다.

국제정치에 관심을 가진 작가는 각국 정상들의 회견 등을 지켜보면서 눈에 들어온 오브제들을 작품 소재로 삼았다.

전시장에서 만난 그는 "국제정치에서 이해관계나 물리적인 힘의 차이에 의해 질서가 생겨나지만, 겉으로는 인도적이고 정의로운 척하는 것이 연극적으로 느껴졌다"라고 말했다.

동물 가죽 위에 그림을 그린 작업으로 알려진 장종완은 이상향을 쫓는 인간의 맹목적인 믿음과 환상, 그 이면에 자리한 현실의 모순을 우화적으로 표현한 작가다.

이번에는 잘 꾸민 연극무대 같은 정치 공간을 그만의 블랙코미디로 재해석했다.

그는 "유심히 봤던 정치 공간 인테리어, 그림 등의 형식과 재료를 바꿔 신화적, 권위적인 오브제를 말랑말랑하게 비틀고 느슨하게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선전 효과를 극대화하는 정치 공간에서 의도적으로 무게감을 덜어냈다.

역대 대통령 초상화가 걸려있을 법한 액자의 주인공은 동물이나 곤충이다.

체제 선전적 문구 대신 '네 생각이나'라는 유행가 가사가, 연설대 앞 프롬프터에는 초등학교 반장선거 연설문이 흐른다.

작가는 "맹목적인 믿음이 만든 풍경에 관심이 많다"라며 "앞으로도 블랙코미디, 우화적인 방식으로 비틀어 희극적으로 풀어내는 작업을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전시는 8월 16일까지.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