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학세권, 숲세권, 팍세권, 주세권…
입력
수정
지면A23

‘학세권’도 흔히 쓰이는 말이다. ‘학교+세권’으로, 자녀 교육에 열성인 30~40대의 선호가 그대로 반영돼 있다. 공원과 숲의 중요성과 비중이 강조되면서 ‘숲세권(녹세권)’이란 말도 생겼다. 학세권 숲세권은 사전에도 올랐다.‘팍세권(공세권)’도 이제는 낯설지 않다. ‘공원(파크)+세권’이니, 숲세권과 비슷하면서도 강조점에 차이가 있다. 대형병원이 가까워 신속한 의료서비스가 장점인 지역은 ‘병세권’이라고 한다. 최근에는 탁 트인 전망이나 근사한 야경의 가치에 주목하면서 ‘뷰(view)세권’도 나왔다. 이것저것 몇 가지가 겹치면 ‘다(多)세권’, 이른바 ‘프리미엄 단지’가 된다. 주택 분양시장이 소비자 맞춤형으로 진화하면서 세일즈 기법도 그만큼 세분화·전문화하고 있다는 얘기다.
분양 전문가나 주택시장 논평가만 신조어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다. ‘주(酒)세권’이란 말이 그렇다. 60대 안팎의 젊은 은퇴자들이 퇴직 후에도 교제폭을 어느 정도 유지하려면 ‘편하게 한잔’ 하기에 용이한 곳에 사는 게 좋다는 바람이 반영된 말이다. 인류는 ‘100세 장수시대’라는 가보지 않은 길에 들어섰고, 주택업계는 그런 변화를 세일즈에 바로 담을 것이다. 경제력에 의욕까지 넘치는 ‘젊은 고령자’ 그룹을 향한 세일즈가 주택시장만의 현상도 아니다.
코로나 공포가 한풀 꺾이면서 이달 들어 주택시장도 꿈틀거리고 있다. 미뤄졌던 분양 물량이 줄줄이 나온다는 보도가 이어진다. ‘격리’에 지친 소비자들도 애써 참았던 소비활동에 나설 여건이 됐다. 2030세대가 역세권에 다시 몰리고, 6070은 주세권에서 만남을 재개하면 소비도 경제도 조금씩 나아지지 않을까.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