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있는 아침] 천경자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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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문화의 가교 한경저 멀리 석양을 배경으로 흰 눈을 머리에 인 킬리만자로가 서 있다. 마른 풀 위엔 얼룩말 사자 기린 가젤 영양 멧돼지 등의 야생동물들이 자리를 잡았다. 화면의 맨 앞에는 커다란 코끼리의 등에 벌거벗은 여인이 얼굴을 무릎에 파묻은 채 웅크리고 앉아 있다. 천경자 화백(1924~2015)이 1976년에 그린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다.
1952년 욕망을 상징하는 뱀 그림 ‘생태’를 발표해 주목받은 작가는 여인의 애환과 꿈, 고독을 환상적인 색채로 담아내 주목받았다.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는 그가 20년 동안 재직했던 홍익대 교수직을 1974년에 그만두고 아프리카 여행을 다녀온 뒤 그린 작품으로 가로 130㎝, 세로 162㎝의 대작이다. 작가는 생전에 “고독과 상념에 잠긴 채 코끼리 등에 엎드려 있는 나체 여인은 바로 나 자신이었다”고 했다. 여행을 떠난 때가 만 49세여서 제목을 이렇게 붙였다. 2년 뒤에는 잡지에 연재한 원고를 묶어 같은 제목의 자서전을 출간하기도 했다.평화로워 보이는 대자연의 품에 안긴 작가의 ‘슬픈 전설’은 무엇이었을까. 갤러리현대의 개관 50주년 특별전 ‘현대 HYUNDAI 50’에서 오는 12일부터 만날 수 있다.
서화동 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