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귀근의 병영톡톡] 기침 소리도 들린다는 GP…손가락 하나에 운명이

기관총 오발 가능성 상존…또 다른 '화약고' NLL은 군사합의서로 안전판
남북, 6·25전쟁 70주년 'GP 완전철거' 결단해야…군사합의서 정신 살려야
한반도에서 우발적 충돌이 발생했을 때 전면전 또는 국지전으로 확대될 수 있는 '화약고'는 크게 2곳으로, 서해 북방한계선(NLL)과 비무장지대(DMZ) 내 감시초소(GP)가 확전 우려가 가장 큰 지역으로 꼽힌다. 이곳은 심지에 불만 붙이면 언제든 큰 폭발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지대다.

불이 한 번 잘못 붙으면 경제, 사회 등 모든 분야의 기능을 일시에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될 수도 있다.

남북은 이런 곳에서 최악의 상황을 막고자 2018년 '9·19 군사합의서'를 채택했다. 지·해상, 공중에 완충구역을 설정해 우발적으로 충돌할 수 있는 근원을 제거하자는 것이 이 합의서의 골격이자 정신이다.

그해 11월 1일 0시부로 각 완충구역에서 적대행위가 중지됐다.

서해는 남측 덕적도 이북으로부터 북측 초도 이남까지, 동해는 남측 속초 이북으로부터 북측 통천 이남까지의 수역에서 포사격 및 해상 기동훈련을 중지했다. 완충구역 내의 해안포 포문이 폐쇄됐고, 기동하는 함정 함포의 포구·포신 덮개도 설치됐다.

북한은 작년 11월 서해 NLL 인근 창린도에서 해안포 사격을 해서 이 합의를 한 차례 위반했다.

비록 북측이 해안포 사격으로 한차례 위반했지만, 해상 완충구역에서는 남북이 서로 얼굴을 붉힐 만한 행위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함정간 무선교신(핫라인)도 가동되고 있다.

북측의 성실한 이행을 전제로, 군사합의서가 서해 NLL에서의 '안전판' 역할을 해내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 상호 조준 GP 기관총 방아쇠가 위험…근원적 해결책은 '상호 완전철수'
지난 3일 남쪽으로 날아온 북한군 총탄으로 DMZ 내 GP에서의 우발적 충돌 가능성이 또 수면 위로 떠올랐다.

남북 GP에는 기관총과 고사총 등 중화기가 설치되어 있다.

DMZ 내에는 개인화기(소총이나 권총) 외에는 중화기 반입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정전협정의 정신이다.

북한은 GP에 박격포와 14.5㎜ 고사총, 무반동포 등을 배치했다.

국군도 K-3, K-6 중기관총, K-4 고속유탄기관총 등을 GP에 반입했다.

남북의 이런 행위를 말려야 할 유엔군사령부마저도 2014년 9월 DMZ 내에 중화기 반입을 허가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남북 GP에는 이들 중화기가 총알이 장전된 상태로 거치되어 있다.

부정기적인 장비 점검 때 방아쇠를 잘 못 건드리면 총알이 날아가 상대편 GP에 명중하게 되어 있다.

양측 초병이 거치된 중화기의 방아쇠에 손가락 하나 까닥 잘못했다간 확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

GP 초병 손가락 하나에 민족의 운명이 달렸다는 소리도 그리 과장된 이야기는 아닌 듯 하다.

강원도 GP에서 발견된 북한군 총탄도 군 당국은 정비 중 오발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유엔군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 특별조사팀이 4일부터 북한군 총알(14.5㎜)에 맞은 한국군 GP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기 때문에 정전협정 위반 여부에 대한 평가를 곧 내릴 것으로 보인다.

비록 북한이 정전협정과 군사합의를 위반했다는 유엔사의 평가가 나오더라도 이는 '문서상 평가'에 그치고, 실효적이지는 않을 전망이다.

북한이 유엔사를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GP에서 우발적인 충돌을 막으려면 정전협정 및 군사합의서 정신에 따라 남북한이 상호 DMZ 내에 설치한 GP를 모두 철거하면 된다.

군사합의서에 따라 2018년 11월 북측은 폭파 방식으로, 남측은 굴착기를 동원한 철거 방식으로 시범 철수 대상 각각 11개 GP 중 10개를 완전히 파괴했다.

파괴된 GP는 상호 거리가 1㎞ 이내였다.

GP 1개씩은 병력과 장비는 철수하되 원형을 보존했다.

국방부는 군사합의서에 따른 GP 시범 철거에 대해 "시범적 GP 상호 철수는 향후 DMZ의 모든 GP를 철수해 나가기 위한 시발점이었다"며 "이를 통해 DMZ내 잠재적 위협의 해소를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판문점 선언에 명시된 'DMZ 평화지대화'를 실현하기 위한 실질적인 조치로서, 비무장지대내 모든 GP 철수를 추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국방부가 앞으로 DMZ 내 모든 GP 상호 철수를 남북 군사회담 의제로 올려 북측과 협의해 나갈 것임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GP 상호 완전 철거 등 군축 문제는 남북이 군사합의서에 명시한 차관급 군사공동위원회를 구성해 협의할 의제로 꼽힌다.

GP 시범 철거에 따라 이제 한국군은 60여 개, 북한군은 150여 개의 GP가 남아 있다.

◇ 6·25전쟁 70주년…군사회담 열어 GP 철거 문제 등 결단 목소리
DMZ 내의 GP는 1953년 정전협정 체결 직후 처음 설치됐다.

강원도 고성의 '동해안 GP'가 최초 설치됐으며 시범 철수 대상으로 지목됐으나 이런 상징성 때문에 원형이 보존됐다.

정전협정에 따라 155마일의 군사분계선(MDL)을 기준으로 남북 양쪽으로 2㎞ 구간을 DMZ로 설정해 놓았지만, 실제 장비로 측정한 것이 아니라 눈대중해서 맞췄다.

협정 체결 당시 유엔사와 북한, 중국 측 합의로 확정한 양쪽 각각 2㎞ 구간은 1대 100만 축척의 지도 위에 선을 그은 것이다.

눈대중으로 지도 위에 긋다 보니 실제 지형적 여건으로 DMZ내 북한군 GP와 남쪽 GP와의 거리가 580여m인 곳도 있다.

한밤중에 고함을 지르거나 기침을 해도 들릴 수 있는 좁은 거리라는 말도 나온다.

군사 전문가들은 남북이 군사합의서를 통해 DMZ 내 GP 각 10개 시범파괴, 지·해상, 공중 적대행위 중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비무장화 등 초보적인 신뢰구축 조치에 대한 경험이 있어 앞으로 점진적으로 높은 단계의 군축 협의를 할 수 있을 것으로 평가한다.

특히 6·25전쟁 70주년을 맞은 올해 군사합의서 이행 점검과 진전을 위한 군사회담을 열어 우발적 충돌 소지가 큰 GP를 상호 철수하는 방안을 협의하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목소리고 커지고 있다.
남북 군인들은 2018년 12월 시범 철거한 GP를 상호 검증하기 위해 DMZ 내에 닦아놓은 작은 오솔길에서 만났다.

그 오솔길은 철거된 남북 GP를 잇는 좁은 길이었다.

당시 남측 검증반 책임자인 윤명식 대령은 북한군 안내 책임자 리종수 상좌(우리의 중령)에게 "여기서(군사분계선에서) 만나는 것은 최초다.

역사적인 첫걸음을 우리가 뗐다"고 말했다.

이에 리 상좌는 "이 오솔길이 앞으로 대통로가 되기를 바란다"고 회답했다.

남북이 의기투합한다면 뭉클했던 당시 상황이 재현될 수 있다. GP가 자칫 우발적 충돌의 근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군사합의서 체결 당시 공감했던 남북한 군 당국이 못해낼 리 없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