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력사가 살아야 우리도 산다…'상생경영' 힘쓰는 기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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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되면서 협력사를 바라보는 기업들의 시선이 확 달라졌다. 협력업체 상황을 수시로 점검하고 직원들을 파견해 어려움을 해결해주는 사례가 부쩍 늘었다. 협력업체 한두 곳만 멈춰서도 연쇄적인 생산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게 기업들의 공통된 판단이다. 만년 ‘을’이었던 협력업체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협력사에 생산성 컨설팅
현대중공업은 지난 3월 동반성장실을 대표이사 직할조직으로 격상했다. 3개 부서 70여 명이 소속된 대규모 조직이다. 최고경영자(CEO)인 한영석 사장이 직접 협력업체 관리업무를 맡는다. 권오갑 현대중공업지주 회장이 조직 개편을 지시했다. 권 회장도 매일 협력업체 사항을 점검하고, 매주 협력업체들의 애로사항을 듣고 있다. 삼성전기의 상생협력센터도 최근 임원 조직으로 승격됐다. 원래 구매팀장 아래 있던 조직의 역할이 커진 셈이다. 회사 관계자는 “사내 제조 과정 생산성을 높인 노하우를 살려 협력업체에도 도움을 주기 위해 내린 결정”이라고 말했다.
기업들은 협력사 한 곳에 생긴 위기가 다른 곳으로 확산되는 것을 막는데 주력하고 있다. LG전자는 협력사 상황을 수시로 확인하고 있다. 협력사에 어려움이 발생했다는 게 확인되면 곧바로 지원에 나선다. 최고경영진들이 정기적으로 협력업체를 방문해 이들의 목소리를 회사 전략에 반영하기도 한다. 해외 생산기지를 국내로 이전하는 리쇼어링을 원하는 협력업체도 적극 지원한다. 중소기업에 리쇼어링 결정은 큰 리스크다. 생산기지를 옮기는 과정에서 거래처를 잃을 수도 있다. 이 때문에 LG전자는 구매 물량을 보장해주고, 생산성을 높이는 컨설팅도 해준다.

이에 더해 협력사들이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돕는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기술 지원, 생산공정 컨설팅, 스마트팩토리 전환 등을 통해서다. 삼성전자, LG전자는 협력업체 스마트팩토리 전환을 지원하고 있다. 포스코는 협력업체인 동국산업이 생산성 저하 문제를 겪고 있다는 점을 파악한 뒤 이를 위한 해결 방안을 자문해주는 ‘워킹그룹’을 파견했다. 엔지니어 마케팅 연구원 등으로 구성된 워킹그룹은 동국산업에 방문해 스마트 공장 구축을 도왔다.상생펀드로 ‘급한 불’ 꺼줘
협력사에 금전적 어려움이 생기면 기업들은 ‘은행’으로 변신한다. 상생펀드를 통해 긴급 자금을 대출해준다. 현대자동차, 삼성전자, LG전자, SK하이닉스, 롯데, GS칼텍스 등이 협력업체에 자금을 지원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상생펀드를 운영 중이다. 이들 회사의 상생펀드 기금만 4조원이 넘는다. GS칼텍스는 상생펀드 2000억원을 마련해 시중금리보다 낮은 금리로 협력사에 운영자금을 대출해준다. 이 외에도 협력사 구매 대금을 100% 현금 결제하고, 세금계산서 수취 후 7일 이내 지급하고 있다.

LS전선은 협력업체에 납품대금을 치를 때 원료인 구리 국제 가격을 반영한다. 구리 가격 등락으로 인한 부담을 덜어주자는 취지다. 구리 가격이 오르면 상승분만큼 납품대금을 더 지급한다. LS니꼬동제련은 주력 제품인 전기동을 만드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열을 온산공단 내 기업들에 공급하고 있다. 에너지 절감과 협력업체 지원을 동시에 실천하고 있다.임대료 할인해 주기도

국내 협력사가 많은 유통업체들은 임대료를 할인해주는 방식으로 협력사를 돕고 있다. 롯데월드몰과 롯데몰, 롯데피트인 등을 운영하는 롯데자산개발은 코로나19 사태로 어려움에 놓인 입점업체들의 3, 4월 임대료를 최대 30% 낮췄다. 전체의 67% 수준인 760여 개 브랜드가 임대료를 감면받는다. 앞서 롯데자산개발은 3, 4월 임대료 납부를 3개월간 유예할 수 있게 해 주고 입점업체들의 운영비를 절감하기 위해 점포 영업시간 단축을 허가했다.
소비 침체로 어려움을 겪는 국내 농가도 돕는다. 롯데마트는 총 판매량 1500여t, 70억원 규모의 농·수·축산물 농가 판매 행사를 열고 있다. 지난 3월 ‘광어 및 전복 소비 촉진 행사’를 개최한 데 이어 통영의 바닷장어 어가들을 위해 20t가량의 바닷장어 판매에도 나섰다. 지난달에는 ‘우리 농가 살리기’ 행사를 열어 출하가 어려운 상처 입은 사과 약 300t가량을 매입해 할인가에 판매했다.

이수빈 기자 ls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