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지원 사각지대…어느 中企人의 하루

"40兆 풀었다지만 그림의 떡…매일매일이 살얼음판"
“버틸 수 있는 기간은 한두 달 정도입니다. 하루하루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네요.”

경기도에서 특수소재 업체 T사를 운영하는 박 대표(48)는 요즘 출근길 발걸음이 무겁다. 회사 유동자금이 바닥을 보이고 있어서다. 그는 매일 아침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일별·월별 자금수지표를 챙기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후 주요 매출처인 해외 방위산업체의 주문이 뚝 끊겼다. 공공기관 납품도 꽉 막혔다. 코로나19 사태가 본격화한 지난 2월 이후 입찰 일정이 무기한 연기됐기 때문이다. 이 회사는 최근 공공입찰이 재개될 것에 대비해 미리 제품 생산에 들어가면서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고 있다. 매달 인건비 등 고정적으로 들어가는 돈만 10억원 안팎. 여기에 제품 생산을 위한 원자재 구매 자금 20억원도 필요하다.

당장 빌려야 할 돈은 약 30억원. 연간 매출 200억원 이상을 안정적으로 올리며 은행들로부터 서로 돈을 써달라는 요청을 받기도 했지만, 코로나19 사태 후 상황이 급변했다. 주거래 은행에 신청한 대출은 사실상 ‘불가’ 통보를 받았다. ‘담보 여력을 소진해 추가 자금을 대출받기 어렵다’는 게 공식 사유였다. 은행 지점 관계자는 그에게 “코로나19 사태 후 은행 내부적으로 대출 기준이 강화됐다”고 귀띔했다. 그러면서 “정부 정책에 맞춰 소상공인을 상대로 한 소액대출에 집중하다 보니 수십억원 규모 대출은 우선순위에서 밀린다”고 전했다.

박 대표가 은행에 이어 찾은 곳은 캐피털사. 연 10%에 가까운 금리가 부담이었지만 비교적 대출이 잘 된다는 얘기를 접해서다. 하지만 여기서도 ‘대출이 불투명하다’는 답변을 들었다. “업황이 안 좋은 데다 회사의 현금흐름도 급속히 악화되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박 대표는 “정부가 코로나19 피해 기업과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40조원이 넘는 돈을 풀었다고 하지만 우리처럼 어중간한 규모 기업엔 ‘그림의 떡’”이라고 말했다. 소규모 자영업자는 소상공인 긴급대출 등을 이용할 수 있고, 큰 기업은 정부의 기간산업 지원금을 받지만 자신의 회사는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하소연이다. 그는 “이러다 고금리 사채시장으로 내몰리지 않을까 두렵다”고 했다.

김동현/민경진 기자 3co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