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포럼] '선량한 풍속'도 인류의 핵심가치 포함해야

각 문화집단의 풍속은 존중돼야 하지만
노예제나 인신매매를 허용할 수 없듯이
막연한 문화상대주의로 도피할 순 없어

윤성근 <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
우리 민법은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公序良俗)’에 위반하는 내용의 법률행위는 무효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 법의 고유한 표현은 아니며 외국의 앞선 입법례에서도 나타난다. 전통적 습속이라기보다 사회의 기본적인 도덕적 신념이나 근본적인 가치 관념 내지 정의 관념을 표현하는 용어라고 할 수 있다. 영미법에서는 퍼블릭 폴리시(public policy)가 이에 해당하며 각종 국제협약에도 등장한다. 공서(公序)라고 번역할 수 있다.

‘법은 상식’이라고 할 때 상식의 의미에 대해 각자 나름대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선량한 풍속’의 의미 역시 사회와 시대에 따라 다르고, 같은 사회 안에서도 준거 집단에 따라 다르다. 그러나 사회의 기본질서가 주관적 유동적인 것에 머물 수는 없다.북미 원주민의 전통에 따르면 대지는 신성한 것이다. 각 부족이 특정한 땅과 맺고 있는 연계는 그들 정체성의 핵심을 이룬다. 미국이 서부를 개척하고 자원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원주민들과 많은 충돌이 있었다. 원주민의 선량한 풍속에 따르면 양보할 수 없는 원칙의 문제까지 침탈, 유린당한 것이다. 한편, 미국 연방정부와 백인 이주민들 입장에서는 미개(未開)한 미신을 타파하고 사회를 발전시켜 국가 전체의 부와 행복을 증대시킨 것이다. 이 충돌에 대해 전해오는 글로 ‘시애틀 추장의 편지’가 유명하다.

원주민 중 일부는 그들의 전통적 의례에서 특정한 선인장(peyote)을 중요한 종교적 매개물로 사용해 왔다. 이것은 1급 마약에 해당한다. 그런 종교 행사에 참석한 원주민 출신 공직자가 해고됨으로써 문화충돌이 현실화했다. 미국 연방헌법 수정 제1조는 종교행사의 자유를 보장한다. 소송을 거듭한 끝에 미국인디언종교자유법이 제정됐고 1994년 개정을 통해 위 선인장의 종교적 이용이 명시적으로 허용됐다.

인류 집단의 단기간 대규모 이동이 잦아지며 문화충돌도 빈발하고 있다. 난민이나 이민을 받아들이는 사회에서는 기존의 ‘선량한 풍속’이 존중받기를 기대한다. 새로 받아들여진 사람들이 문화 핵심을 공유하고 내재화해서 사회의 동료 구성원으로 녹아들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한편, 이동해온 집단은 그들 나름의 전통과 문화를 고수하고 보존하려 노력한다. 이것은 그들의 정체성과 관련된다. 아름다운 조화가 이뤄진다면 문화 전체가 풍성해지고 함께 행복한 공동체가 가능해진다. 그러나 그에 이르기까지 상당 기간 문화충돌을 포용하고 타협해야 한다.무슬림 여성들의 히잡에 대해 프랑스는 알제리 식민지 시절부터 금지해 왔고 현재도 정교분리와 여권신장을 명분으로 공공시설에서의 착용을 금지하고 있다. 유럽사법재판소는 직장 내 히잡 금지가 허용된다고 판결했는데 유럽인권재판소는 법정에서 히잡 착용을 금지한 벨기에 법원의 조치가 종교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판결한 바 있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직장 내 히잡 금지가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는 부당한 차별이라고 판결했다. 독일에서는 공립학교 교사의 히잡 금지와 관련해 수녀들의 베일도 금지할 것인지 문제된 바 있다. 이렇듯 일견 간단해 보이는 문화 현상에 대해서도 다양한 견해가 대립한다.

현대 세계의 국가와 사회들은 전례없이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우리나라 여성이 이슬람법에 따라 결혼해 두 번째 부인이 되기도 하고 일방적 이혼(소위 탈라크(talaq) 이혼)을 당하기도 한다. 그런 결혼이나 이혼을 우리나라 법상 인정할지 여부는 현실적 문제다.

각 문화집단의 선량한 풍속은 최대한 존중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존중에도 한계가 있다. 혼인이 어떤 형식과 요건에 따라 이뤄지고 그로 인한 권리 의무가 무엇인지는 문화마다 다르며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나 아무리 오래된 전통이라도 명예살인이나 순장제가 존중될 수는 없다. 많은 사회에 아직도 왕족과 귀족이 존재하며 이런 신분제 역시 존중된다. 그러나 노예제나 인신매매가 존중될 수는 없다.

결국 선량한 풍속 내지 공서란 어느 한 사회와 지배적 집단이 편안하게 생각하는 그들만의 가치에 멈출 수 없고 인류 전체의 공통적이고 핵심적인 가치를 포함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렇다고 개별 사회의 문화적 특성이나 정체성과 유리돼서도 곤란하다. 사회진화론의 파괴적이고 획일적인 영향을 반대하는 한편 막연한 문화상대주의로 무책임하게 도피할 수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