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총수 2년차에 '대국민 사과'…삼성 체질변화 '신호탄' [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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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부회장, 경영권 승계 언급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삼성준법감시위원회(이하 '준법감시위')의 권고를 받아들여 직접 국민들 앞에 사과했다. 그룹 총수 2년차를 맞이해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로 인한 경영 불확실성을 정면 돌파하고 자신에게 드리운 사법리스크를 최소화하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무노조 경영 말 나오지 않게 할 것"
사과문 발표 연기 요청하며 진정성에 공들여
재계 "사회적 책임 강화 통한 신뢰 회복 전망"
◆ "이 모든 것은 저의 잘못 때문"이 부회장은 6일 오후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서초사옥 다목적홀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오늘의 삼성이 글로벌 일류기업으로 성장한 데에는 국민의 사랑과 관심이 있어서 가능했지만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며 사과했다.
이 부회장은 "기술과 제품은 1류라는 찬사를 듣고 있지만 삼성을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따갑다"며 "이 모든 것은 저의 잘못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경영권 승계와 관련해 사과하면서 "이젠 경영권 승계 문제로 더 이상 논란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며 "편법에 기대거나 윤리적 지탄을 받을 일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특히 그는 "이 기회에 한 말씀 더 드리겠다. 제 아이들에게 회사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을 생각"이라며 "경영 환경도 녹록치 않은 데 제 자신이 제대로 평가도 받기 전에 제 이후의 승계를 언급한다는 것이 무책임한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울러 그는 노사 문제로 재판을 받고 있는 상황과 관련해서도 "책임을 통감한다"며 "그동안 삼성 노조 문제로 인해 상처를 입은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이제 더이상 삼성에 '무노조 경영'이란 말이 나오지 않게 하겠다"고 공언했다.
◆ 사과문 발표, 준법감시위 첫 권고보다 한 달 늦어져이번 대국민 사과는 지난 2월 출범한 준법감시위가 ▲경영권 승계 ▲노동 ▲시민사회소통 등 삼성에 요구되는 준법 의제를 언급하고 이에 대한 개선방안을 마련해 이 부회장이 국민들 앞에서 발표하라고 권고한 데 따른 것이다.
이 부회장의 이날 사과문 발표는 당초 기한보다 한 달 가량 늦어진 것이다. 앞서 준법감시위원회는 사과문 발표의 기한을 지난달 10일로 정했었다. 하지만 삼성 측은 "코로나19 사태가 확산하면서 권고안 논의 일정에 차질이 불가피했다"며 최소 한 달 이상 기한을 연장해달라고 요청했다. 의견 청취, 회의, 집단토론, 이사회 보고 등 절차를 진행하는 과정이 예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는 것이다.
준법감시위는 삼성 측의 요청을 받아들여 이 부회장을 비롯한 7개 계열사에 보낸 권고문에 대한 회신 기한을 이달 11일까지로 연장하기로 했다. 삼성이 충실한 이행 방안을 마련하도록 더 시간을 주는 게 옳다고 판단하고 삼성의 요청을 받아들인 것이다.다만 김지형 준법감시위 위원장은 "삼성 측에서 기한을 지키지 못한 건 실망스러운 일"이라며 "비록 어려운 여건이긴 하지만 하루라도 앞당겨 최선의 방안을 도출해 내는 것이 국민 기대에 부응하는 도리"라고 말한 바 있다.
◆ 경영환경 불확실성 + 사법리스트 털고 가겠다는 전략업계에서는 이 부회장의 사과문 발표 연기 요청에 다른 의미가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시간을 더 들여 자신과 삼성전자에 드리운 사법리스크를 확실히 해소하고, 코로나19로 어려움에 처한 경영 위기를 정면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보고 있다.
올 들어 그룹 총수 2주년을 맞아 보폭을 넓혀가고 있던 이 부회장에게 사법리스크는 늘 부담이었다. 대법원은 지난해 8월 이 부회장의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해 2심에서 일부 무죄를 선고했던 혐의에 대해 유죄 취지로 돌려보내 현재 서울고법에서 파기환송심이 진행 중이다.
또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의혹과 관련한 검찰 수사에 이 부회장 소환도 임박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으며, 이 부회장이 직접적 피고인은 아니지만 삼성 노조 와해 혐의 재판,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혐의 재판 등이 진행 중이다.
대외적으로는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해외 사업장이 문을 닫고 제품 판매가 타격을 입는 위기를 마주하고 있다.때문에 이 부회장은 사과문 발표를 준비하면서도 올 들어 현장 경영을 강화해왔다. 올해 1월 화성사업장 반도체 연구소와 브라질 마나우스 공장, 2월 EUV(Extreme Ultra Violet·극자외선) 전용 반도체 생산라인, 3월 삼성디스플레이 아산사업장·삼성전자 구미사업장·수원 삼성종합기술원 등을 방문해 6차례나 '현장 경영' 행보를 보였다.
이 부회장은 지난 3월 종합기술원을 방문한 자리에서도 "어렵고 힘들 때일수록 미래를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국민 성원에 우리가 보답할 수 있는 길은 혁신"이라며 "한계에 부딪혔다고 생각될 때 다시 힘을 내 벽을 넘자"고 강조하기도 했다.재계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그룹 총수 역할을 하면서 지속적으로 내놨던 메시지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 강화를 통한 국민 신뢰 회복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며 "준법감시위의 권고를 받아들이고 직접 발표에 나선 것은 앞으로 이 부회장이 그룹 경영에 큰 변화를 시도할 것임을 암시한다"고 말했다.
강경주 한경닷컴 기자 quraso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