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직의 신성장론] '창조적 지도자' 선출시스템 구축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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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A29
(11) 지도자 패러다임 대변환영국 역사학자 아널드 토인비가 통찰했듯이 한 사회가 역경과 도전에 성공적으로 응전해 성장과 진보를 이룩하려면 새로운 아이디어와 해법을 제시하는 ‘창조적 지도자’가 요구된다. ‘5년 1%포인트 하락의 법칙’에 따른 성장 추락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충격까지 겹쳐 커다란 도전에 직면한 한국 경제도 마찬가지다. 성장 추락에 따른 경제적 재난을 예방하려면 창조형 경제체제로의 대전환을 이끌 창의적 지도자가 요구된다. 가까이는 4·15 총선을 통해 선출된 국회의원들부터 새바람을 일으켜 창조적 지도자 역할을 해야 한다.
우리 사회에 퍼진 '인재 그레셤의 법칙'
정책실명제 도입하고 창조형 리더 뽑아
모방형 사회 뛰어넘을 성장동력 회복을
김세직 <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혁신적인 발상으로 구습과 기득권을 깨고 진보적 변화를 이끌어내는 창조적 리더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보수든 진보든 뛰어난 암기력 덕분에 모방형 인적 자본 축적에 비교우위를 발휘해 리더가 된 이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창의성의 중요성을 알고 있을지 몰라도 정작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며 창의적인 일을 해본 경험이 없을 가능성이 높다. 또 이미 기득권화된 자신의 자산인 모방형 인적 자본의 가치를 저하시킬 창조형 경제체제로의 변환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거나 반대했을 가능성도 높다. 지난 25년간 성장률이 5년에 1%포인트씩 추락하고 소득분배가 악화됐는데도 ‘창조형 인적 자본 개혁’ 노력이 보수·진보 정권에 상관없이 거의 없었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창조형 인적 자본 개혁의 딜레마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다행히 기업, 학교, 언론 등 우리 사회 곳곳에는 다수는 아니지만 창조형 인적 자본 개혁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창의적 지도자가 존재한다. 이들이 먼저 모여서 창조형 국가 건설의 구체적 청사진을 같이 만들고, 기존 모방형 리더들을 설득하는 ‘창의혁명 캠페인’을 전개하도록 해야 한다. 모방형 지도자들도 스스로 변신하는 노력을 통해 창조적 리더로 거듭나 변혁에 동참함으로써 커다란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주권자인 국민이 나서서 정치적 진영논리에 관계없이 오로지 ‘창조적 능력’을 기준으로 각 분야의 리더를 뽑는 ‘지도자 패러다임 대변혁 운동’을 벌이고 이를 제도화해야 한다. 화폐 유통과정에서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쫓아내는 ‘그레셤의 법칙’이 작동하듯, 우리 사회의 공적 영역에서는 남의 아이디어를 모방하는 능력과 학연·지연 같은 인적 네트워크에만 의존하는 인사들이 창의적 전문가들을 몰아내는 ‘인재 그레셤의 법칙’이 작동하고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사회 각 분야 선출직, 임명직 리더의 자격요건으로 창의적 능력을 명시하고 국민과 언론이 창조형 리더가 선출·선발되는지 모니터링하는 시스템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리더의 창의적 활동 이력과 성과를 추적하고 국민이 이런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정치인·공무원 아이디어 실명제’를 도입·작동시켜야 한다. 국회의원과 공무원이 추진한 모든 정책제안서·보고서마다 그 정책 아이디어의 최초 발상자가 정책 추진자인 정치인·공무원 자신이면 그 이름을 명시하고,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빌렸으면 원작자를 명시하게 한 뒤 성과를 검증해 데이터베이스(DB)화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후보자들이 얼마나 많은 창의적 아이디어를 스스로 창출해 왔는지를 국민이 쉽게 확인하고, 이를 기준으로 선출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기업 부문에서도 주주들이 창조적 인적 자본이 충만한 인재를 발탁해 최고경영자(CEO)나 기업 총수로 선출할 수 있도록 비슷한 모니터링 시스템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뽑는 것에 그치지 않고 국민 스스로 창조적 지도자가 되는 것도 중요하다. 리더는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전국민 아이디어 등록제’와 ‘창의인재 재탄생 프로그램’ 도입을 통해 전 국민이 창의적 아이디어 창출에 참여할 수 있게 하면 국민 누구나 각 분야의 창의적 리더로 성장할 가능성이 열리게 된다.
오늘의 시대정신은 기존의 모방형 체제로부터 창의적 아이디어가 성장·고용·분배를 견인하는 창조형 경제체제로의 진보다. 이를 시대적 소명으로 인식하는 다수의 창조적 지도자가 등장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