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내악에 녹아든 민요·왈츠·탱고…한경 필의 '봄빛 선율 성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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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 한경닷컴 신춘음악회
한경필, 두 번째 무관중 공연
한경닷컴·유튜브 통해 생중계
음악회는 아름다운 봄빛 선율의 성찬이라고 할 만했다. 한경필하모닉은 봄밤에 어울리는 다양한 실내악을 펼쳐냈다. 공연은 왈츠곡으로 산뜻하게 출발했다. 안영지(플루트), 안중현(오보에), 박진오(클라리넷), 이은호(바순), 임은진(호른) 등 목관 5중주 연주자들이 차이코프스키의 ‘꽃의 왈츠’로 시작을 알렸다. 음악회 진행을 맡은 류태형 음악평론가는 “시작부터 봄이 느껴진다”며 “다양한 음악이 조화를 이룰 오늘 공연의 모든 연주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본 공연의 첫 무대는 20세기 영국 작곡가 루터의 ‘현을 위한 모음곡’. 한두 번 들으면 따라 부를 수 있는 영국 민요 선율을 주제로 한 곡들이 흘렀다. 바이올린이 경쾌하게 치고 나가고 비올라와 첼로가 중심을 잡아줬다. 현악기 선율들이 성가대의 화음처럼 어우러졌다. 대중적이면서도 고정적인 영국 음악의 전형을 계승한 루터의 특징을 고스란히 들려줬다.이어진 곡은 비발디의 ‘사계’ 중 ‘봄’과 피아졸라의 ‘부에노스아이레스 사계’ 중 ‘항구의 봄’. 한경필하모닉의 두 악장이 사뭇 대조적이고 대비되는 두 ‘봄’의 바이올린 독주 파트를 맡아 개성 있는 연주를 들려줬다. 먼저 김현남 악장이 밝고 청명한 18세기 이탈리아의 봄을 이끌었다. 가끔 천둥과 번개가 치지만 포근하면서도 온화한, 때론 나른하기까지 한 전원의 봄 풍경을 유려하게 표현했다. 이어 격정적이고 강렬한 20세기 아르헨티나의 ‘봄’이 반전 드라마를 연출했다. 활이 현을 긁으며 내는 불협화음이 감정을 고조시켰다. 봄에도 뜨거운 남미의 태양볕에서 탱고를 추는 선원들의 모습이 연상됐다. 중반부에 정진희 악장이 독주로 들려준 서글픈 선율은 애수 어린 감성을 자극했다. 5분여의 짧은 곡이지만 듣는 내내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무대였다.
공연의 백미는 19세기 노르웨이 작곡가 그리그의 ‘홀베르그 모음곡’이었다. 정 악장은 “지난달 27일 공연에서 다양한 독주자들의 개성을 드러냈다면 이번 공연에선 화합에 초점을 맞춘 모음곡을 택했다”며 “특히 연주하기 까다로운 홀베르그 모음곡으로 한경필하모닉의 실력을 뽐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전주곡과 사라반드, 가보트와 뮈제트 등 우아한 소품곡들이 한경필하모닉 현악 단원들의 일치된 호흡과 동작에 맞춰 흘러나왔다. 프랑스 상류층이 즐겨 들으며 춤추던 18세기 바로크 춤곡의 형식에 북유럽 민초들의 가락이 섞였다. 네 번째 곡은 에르(Air). 에어 또는 아리아라고 불리는 형식이다. 노래하는 듯한 서정적인 선율 중심의 기악 소품이다. 정 악장이 연주한 바이올린 독주 선율은 ‘에르’ 중 가장 널리 알려진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를 떠올리게 하면서도 더 엄숙하게 들렸다. 그리그 특유의 우수 어린 정서가 물씬 배어 나왔다. 마지막 ‘리고동’에서 바이올린 솔로와 비올라 솔로가 정겹고 흥겹게 춤을 추듯이 대화를 주고받으며 대미를 장식했다.류 평론가는 “클래식 음악은 한계가 없다는 걸 보여준 연주였다”며 “입문자들도 클래식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 수 있었을 것”이라고 총평했다. 그는 “한경필하모닉의 오늘 연주를 들으니 이상적인 실내악 사운드를 구현할 수 있는 오케스트라라는 생각이 든다”며 “한경필하모닉의 연주를 공연장 객석에서 관객들과 감상하고 갈채를 보낼 수 있는 그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고대한다”고 말했다. 실시간으로 공연을 온라인을 통해 감상한 아이디 알레씨오는 채팅창에 “아름다운 멜로디를 따라 봄의 향기가 어느새 집안을 가득 채웠다”며 “이탈리아 푸루토오소 해변을 거니는 것 같은 환상적인 음표와의 여행이었다”고 감상평을 달았다.
공연은 한경필하모닉 정단원들이 모두 무대에 나와 홍난파의 가곡 ‘고향의 봄’을 앙코르로 들려주며 마무리됐다. 이날 음악회 실황은 한경필하모닉 유튜브 계정에서 다시보기를 통해 감상할 수 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