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재난지원금 기부' 놓고 고심…"노조가 나서줬으면"

당사자 확인 없는 발표에 역풍
'기부 강요'로 보일까 조심스러워

기부 동참 유도 '캠페인' 의견도
사진=연합뉴스
"정책 기조에는 동참하고 싶은데 개인이 선택할 문제라 고민이 됩니다."

대형 시중은행의 한 임원은 이같이 말했다. 전날 문재인 대통령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긴급재난지원금 전액을 기부한다 소식이 알려진 후다. 그는 "이미 지난달부터 임직원 대상 기부 동참 캠페인 진행 여부를 논의하고 있다"며 "고임금 산업에 종사하는 만큼 기부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지만, 강요할 수 없어 조심스러운 게 사실"이라고 했다.8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국내 시중은행들은 재난지원금 기부 동참을 놓고 고심에 빠졌다. 전 임직원이 참여하는 기부 활동을 통해 정책 기조에 동참하고 싶지만, 직원 동의 없는 일방적인 발표로 인식될 수 있어 조심하는 분위기다.

금융업계 종사자들은 고임금을 받는 것으로 유명하다. 4대 금융지주의 2019년 기준 임직원 평균 연봉은 1억2900만원에 달한다. 올 1분기 코로나19 상황에서도 대부분의 은행들이 호실적을 거두면서 금융권의 자발적 희생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다만 농협 등과 같이 섣불리 기부 동참에 나섰다가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농협의 경우 지난 5일 임직원이 동참하는 자발적 기부를 발표했지만, 당사자 확인 없는 일방적인 결정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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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중은행들은 대안으로 노조를 통한 기부 캠페인을 계획하고 있다. 금융업계는 노조 가입률이 90%에 달할 정도로 높아 노조가 기부 동참 의사를 밝힐 경우 잡음 없이 정책 기조에 따라갈 수 있다.

노조 입장에서도 부담스러운 건 사실이다. 다만 '자발적인 기부'보다 '기부 참여를 독려한다'는 캠페인 형식으로 진행될 경우 부담을 덜 수 있다. 일방적인 강요라는 비판으로부터도 자유롭다.

금융권 한 노조위원장은 "강제할 수도, 기부 여부를 확인할 수도 없기 때문에 '기부하겠다'는 단정적인 표현은 금물"이라며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캠페인 형식'이면 부담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일각에선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요식행위일 뿐 실제 기부 참여율은 미미할 것이란 부정적인 반응도 나온다. 일일이 기부 여부를 확인할 수 없고 임직원들이 세대주가 아닌 경우도 많아 참여율이 낮을 것이란 주장이다. 오히려 섣부른 캠페인이 내부 임직원 반발로 나타날 경우 득보다 실이 많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은행권 관계자는 "소상공인 대출 등으로 업무가 과중한 상황에서 사측이나 노조가 개인의 권리에 개입하는 모습을 보이는 건 부적절해 보인다"며 "기부 캠페인과 무관하게 기부할 사람을 할 테니, 굳이 긁어 부스럼을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윤진우/채선희 한경닷컴 기자 jiin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