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불경제'가 키운 슈퍼돼지 옥자의 슬픈 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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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노믹스강원도 깊은 산꼭대기에 사는 미자. 혈육이라곤 할아버지뿐인 이 소녀는 자신의 가족을 둘이 아니라 셋이라고 말한다. 네 살 때부터 함께 자란 ‘슈퍼돼지’ 옥자도 미자에겐 가족이다. 보통 돼지보다 덩치가 열 배는 크고 지능도 높은 옥자는 사실 글로벌 기업인 미란도그룹의 유전자 조작으로 탄생한 슈퍼돼지다.
영화 '옥자'로 본 외부효과
"값싼 고기도 '귀한 생명'이었음을 잊지 말아줘요"
동물복지·소비자 건강은 뒷전
GMO로 떼돈 번 미란도 그룹
맛있는 '육즙'의 다른 이름은
수많은 '옥자'의 눈물일 수도
10년 전. 미란도는 유전자 조작 사실을 숨긴 채 슈퍼돼지들을 세계 곳곳에 보냈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성장한 슈퍼돼지 가운데 최고를 가리기 위해서다. 시간이 흘러 한국으로 온 옥자는 자연에서 뛰어놀며 최고의 슈퍼돼지로 성장한다. 미란도그룹은 ‘최상품’ 옥자를 미국 뉴욕 실험실로 데려가기로 결정한다. 미자가 옥자를 구하러 집을 떠나면서 영화의 물리적 공간은 산꼭대기에서 서울 지하상가로, 뉴욕 한복판까지 확장된다.외부불경제가 낳은 슈퍼돼지
영화 속 미란도그룹의 행동은 전형적인 부정적 외부효과의 사례다. 경제학에서는 한 사람의 행위가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지만 이에 대해 보상이나 제재가 이뤄지지 않는 상태를 외부효과라고 정의한다. 다른 이에게 미치는 영향이 바람직하면 긍정적 외부효과(외부경제), 나쁘면 부정적 외부효과(외부불경제)라고 부른다.화학약품을 만드는 미란도그룹은 환경 오염 가능성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호수가 터져나가도록 오염 물질을 방류한다. 이로 인해 얻은 이익은 미란도의 것이지만 환경오염에 따른 비용은 부담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몰래 유전자 조작 돼지를 만들어 식용으로 유통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품질 좋고 저렴한 돼지고기를 유통해 얻는 이익은 미란도가 가져가지만 이로 인해 알려지지 않은 건강상 문제가 생기더라도 비용은 지지 않는다. 층간소음이나 길거리 흡연도 주변에서 찾아볼 수 있는 외부불경제의 사례다.
외부경제의 대표 사례는 예방접종이다. 한 사람이 독감 예방접종 주사를 맞으면 예방접종을 하지 않은 사람도 간접적으로 이익을 본다. 주사를 맞은 사람이 많을수록 사회 전체의 독감 전파 확률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예방접종을 하지 않은 사람이 접종한 사람에게 비용을 내지는 않는다. 산림을 가꾸거나 기초과학 연구에 힘쓰는 일도 긍정적 외부효과를 만들어낸다.
시장실패를 어떻게 해결할까현실에서 외부불경제는 사회가 필요한 것보다 너무 많이, 외부경제는 너무 적게 생긴다. 개인의 행동으로 인한 비용과 이익이 시장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하는데도 나무를 가꾸고 기초과학 연구에 헌신할 사람은 많지 않다. 《그래프 1》에서 사회적으로 필요한 생산량은 Q1이지만 실제 생산은 Q0만큼만 이뤄진다. 그만큼 사회 전체엔 손해다. 《그래프 2》에선 반대로 사적 공급이 많아 실제 생산이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이 이뤄진다.
경제학은 이를 시장 실패라고 부른다. 시장에만 맡겨둬선 자원이 효율적으로 배분되지 못하는 사례가 발생한다는 얘기다. 영화 옥자의 후반부에선 외부불경제의 상징인 슈퍼돼지들이 미란도그룹 공장 전체에 가득 찬 모습이 등장한다. 시장에서 제재가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미란도그룹의 선택이지만, 사회 전체엔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지 모를 일이다.외부효과는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는 근거 중 하나다. 외부경제를 일으키는 행동에는 정부가 혜택을 줘서 더 많이 생산하도록 유도하고, 외부불경제를 유발하는 행동은 법으로 처벌하거나 세금을 물려서 덜 생산하도록 하는 게 사회 전체에 이득이기 때문이다. 큰 정부를 지지하는 경제학자들은 시장실패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크다고 보고 정부의 시장 개입을 정당화한다.
반면 시장실패도 시장을 활용해 풀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경제학자들이 있다. 1991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미국의 경제학자 로널드 코즈 교수가 만든 ‘코즈의 정리’가 대표 사례다. 소유권을 제대로 확립하고 거래비용을 없애면 시장에서도 외부효과를 해결할 수 있다는 이론이다. 현실에서 이를 적용한 대표 사례가 탄소배출권이다. 탄소를 배출할 권리를 기업에 줘서 소유권을 확립하고, 기업이 이를 자유롭게 거래하도록 내버려두면 시장에서 저절로 적정 가격이 형성된다. 반면 정부가 개입해 기업별로 탄소 배출권을 할당하고 세금을 매기는 식으로 제한하면 거래의 왜곡이 일어나게 된다. 배출권이 부족해진 기업은 시장에서 구입해야 하지만, 배출권이 남은 기업은 가격이 오를 것을 기대해 내놓지 않으면서 거래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것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전체적으로 비용을 늘리는 부작용을 낳는다. 우리나라 탄소배출권 시장은 전형적인 후자의 경우에 속한다.
소비, 합리와 윤리 사이에서
영화 옥자는 합리적 소비와 윤리적 소비에 대한 화두도 던진다. 영화 속 환경운동가 집단인 ‘동물해방전선’은 서울 한복판에서 옥자를 납치했다가 다시 풀어준다. 옥자의 귀 아래에 블랙박스를 심어 미란도그룹의 뉴욕 실험실 내부를 촬영하기 위해서다. 회사 이미지를 개선하려는 미란도그룹이 미자를 뉴욕으로 초대해 옥자와 감동적인 재회 이벤트를 여는 순간, 동물해방전선은 미란도그룹이 돼지를 강제로 교배하고 전기충격기로 학대하는 등 비윤리적으로 사육한다고 폭로한다.
옥자를 보러 광장에 몰려든 소비자들은 미란도그룹을 거세게 비난한다. 당장이라도 미란도가 생산하는 돼지고기의 불매운동에 나설 기세다. 윤리적 소비의 전형이다. 주류경제학에선 사람들이 소비를 결정할 때는 자신의 소득, 상품 가격, 상품의 품질(효용) 등을 주로 고려한다고 본다. 윤리적 소비는 한 가지를 더 생각한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나 사회 전체에 미칠 영향이다.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은 소비자는 비싸고 품질이 떨어져도 플라스틱 빨대 대신 종이 빨대를 산다.
소비자의 거센 항의에도 미란도그룹 수장인 낸시는 끄떡하지 않는다. 오히려 공장을 최대한 가동해 돼지고기 생산량을 늘리라고 주문한다. 합리적인 경제인이라면 품질 좋고 가격까지 싼 제품을 외면할 리 없다는 확신 때문이다. “가격이 싸면 사람들은 먹어. 초반 매출이 아주 좋을 거야. 내가 장담하지.”
소비가 원하는 세상을 만든다
영화는 미란도그룹의 돼지고기가 정말 잘 팔렸는지까지는 보여주지 않는다. 현실이었다면 어떨까. 알 순 없다. 2006년 롯데월드 사망 사고가 발생한 직후 무료입장 이벤트를 열자 놀이공원은 문전성시를 이뤘다. 안전 사고와 대처 논란에도 소비자들은 낮은 가격과 높은 효용을 택했다. 반면 2013년 ‘갑질’ 논란으로 물의를 빚은 남양유업에 대한 불매운동은 현재진행형이다.
영화의 마지막. 동물을 가족처럼 여기는 미자는 미란도그룹에 순금으로 값을 치르고 옥자를 구하는 데 성공한다. 미자가 구한 건 옥자뿐이다. 다른 돼지들은 아직 거기에 있다. 동물복지가 중요하다고 믿는 소비자가 늘어 불매운동에 성공할 때 다른 돼지들도 자유를 찾을 것이다.동물복지를 실현하는 것과 좋은 품질의 고기를 값싸게 제공하는 것. 무엇이 더 가치 있는지는 판단의 영역이다. 주머니가 가벼운 사람에게 양질의 동물 단백질을 제공하는 문제 역시 동물 복지와 비교해 결코 가볍지 않다. 투표가 세상을 바꾸듯 소비도 세상을 바꾼다. 각자의 소비가 자신이 원하는 세상을 만들어 갈 뿐이다.
나수지 기자 suj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