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4년 원전 비중 10% 아래로 '뚝'

정부 "脫원전 후퇴는 없다"
원전 26기→17기로 감축
석탄발전 24기, LNG로 전환
신재생에너지 40%로 확대
8일 공개된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초안에 따르면 원자력 발전소는 2024년 26기에서 2034년 17기까지 줄어든다. 사진은 경북 울진 한울원전. /한경DB
정부의 ‘탈(脫)원전’ 로드맵에 따라 국내 발전원 설비에서 차지하는 원자력발전 비중이 올해 19.2%에서 2034년 9.9%로 14년 만에 반토막 날 전망이다. ‘탈석탄’ 속도가 대폭 빨라져 석탄화력 비중도 같은 기간 27.1%에서 14.9%로 쪼그라든다. 대신 신재생에너지 비중은 15.1%에서 40.0%로 두 배 이상으로 확대된다.

하지만 탈원전, 탈석탄 정책으로 전기요금 인상, 전력 수급 안정성 약화 등 후유증이 불가피할 것이란 우려도 커지고 있다.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수립을 위한 민간전문가 자문기구인 총괄분과위원회는 8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지난해 3월부터 51차례 회의를 거쳐 수렴한 이 같은 내용의 주요 논의 결과를 발표했다.

전력수급기본계획은 전기사업법에 따라 정부가 전력 수급의 안정을 위해 2년마다 세우는 15년 단위의 행정계획이다.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은 2020년부터 2034년까지 에너지 수급 방안을 담는다. 이날 발표된 내용은 초안으로 정부는 추후 전력환경영향평가, 공청회 등을 거쳐 최종안을 확정한다.

이에 따르면 원전은 올해 25기(23.3GW)에서 2024년 26기로 늘었다가 2034년엔 17기(19.4GW)로 감소한다. 석탄발전은 올해 56기(36.8GW)에서 2023년 60기까지 증가했다가 2034년엔 37기(29.0GW)로 줄어든다. 수명 30년이 넘은 모든 석탄발전을 폐지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대신 폐지되는 석탄발전 중 24기(12.7GW)는 액화천연가스(LNG)발전소로 전환해 부족한 전력을 충당한다. 신재생에너지도 올해 15.8GW에서 2034년 78.1GW로 늘어난다.이유수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발전단가가 싼 원전과 석탄발전을 LNG와 신재생에너지로 대체하면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며 “재생에너지는 날씨에 따라 가동률이 들쭉날쭉한 만큼 안정적인 전력설비 운영도 과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9차 전력수급 계획 '윤곽'
2034년까지 전기요금 큰 폭 인상 불가피할 듯

전력 발전 원료에서 원자력 발전과 석탄화력의 비중을 줄이고 신재생에너지와 액화천연가스(LNG)를 높이면 발전 단가는 자연히 높아질 수밖에 없다. 올해 2월을 기준으로 ㎾h당 발전 단가는 원전이 60.7원, 석탄은 91.2원, LNG는 114.6원이다. 태양광과 풍력 등은 일종의 정부 보조금인 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 거래가격까지 합쳐 원전의 두 배인 120원 정도의 비용이 든다.

하지만 8일 ‘9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초안을 작성한 총괄분과위원회에서는 전기료 상승에 대해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원자력 발전과 온실가스 배출을 줄인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다.
전기료, 7% 이상 인상 불가피

에너지원별 발전량을 기준으로 추산한 전력 공급 원가는 지난해 ㎾h당 88.13원이었다. 지난해 에너지원별 발전량 비중은 원전이 25.9%, 석탄 40.4%, LNG 25.6%, 신재생에너지 5.2% 등이었다.총괄분과위는 9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초안에서 이 비중은 2034년 원전 23.6%, 석탄 28.6%, LNG 19.7%, 신재생에너지 26.3%로 변경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올해 24.7GW인 원전 발전량은 2034년 19.4GW, 34.7GW인 석탄은 29.0GW까지 줄이는 계획을 세웠기 때문이다. 같은 기간 LNG는 41.3GW에서 60.6GW로, 신재생에너지는 19.3GW에서 78.1GW까지 전력 생산설비가 늘어난다.

LNG를 비롯한 주요 에너지원의 수입 가격이 전혀 인상되지 않는다고 가정하고 에너지원별 비중이 이렇게 조정되면 2034년 전력 공급원가는 94.5원이 될 것으로 추정된다. 7.2%의 인상폭이다.

물론 이번 9차 기본계획에서 제시된 생산설비 비중이 전력 생산량 비중으로 바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날씨에 큰 영향을 받는 신재생에너지의 경우 발전량은 관련 설비의 10~20%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재생에너지와 발전 단가가 크게 차이 나지 않는 LNG 비중이 높아진 만큼 실제 전력 공급원가 인상폭은 그리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에너지 전환 관련 정부 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는 한 민간 전문가는 “9차 계획대로 하면 전기료 인상은 불가피하다고 봐야 한다”며 “신재생에너지 발전용량을 14년간 네 배 이상 확대하는 과정에서 들어가는 각종 비용이 더 큰 부담으로 다가올 것”이라고 말했다.

“애초에 경제성 검토는 논외”

정부는 이번 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에 전기료 인상 여부와 인상폭에 대해서는 전혀 살펴보지 않았다. 산업계에서 “제조업, 정보기술(IT)산업, 판매업 등에서 전기료는 가장 기본적인 비용 항목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란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총괄분과위원장을 맡은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에너지정책학 교수는 “정부가 제시한 위원회의 검토 범위 자체에 경제성 등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정부가 2034년까지 에너지 계획을 세우는 기준으로 제시한 것은 탈(脫)원전에 따른 신재생에너지 비중 확대, 온실가스 및 미세먼지 감축을 위한 석탄 화력 감소 등이다. 원전 수 감축과 신재생에너지 비중의 구체적인 미래 목표치는 이미 2018년 3차 에너지 기본계획에 명시돼 있다.

이번 9차 기본계획에는 온실가스를 2030년까지 1억9300만t 수준으로 줄인다는 목표가 추가됐다. 석탄화력발전소를 대거 줄이고 그 빈자리를 LNG로 채우는 계획이 추가된 배경이다. 총괄분과위 관계자는 “탈원전과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달성하면서 경제성까지 고려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며 “이후 절차에서도 전기료 등에 대한 문제는 검토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대신 이번 계획에서는 신재생에너지로의 전환 속도를 높이기로 했다. 당초 2040년에나 가능할 것으로 예상됐던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 25.0% 목표치를 2034년 26.3%로 6년 앞당겨 달성하겠다는 것이다. 대신 원전은 한빛3호기를 추가 폐쇄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2024년 26기로 정점을 찍는 원전은 2034년 17기까지 줄어든다. 현재 56기인 석탄 화력발전소는 2023년 60기까지 늘어났다가 2034년에는 37기로 감소한다.산업계 관계자는 “자율주행차 보급 확대와 반도체 탑재 기기 증가는 필연적으로 전력 수요 증가를 부른다”며 “기업과 국민경제의 가장 중요한 상수인 전기료 인상에 대한 적정한 논의 없이 2034년까지 국가 에너지정책의 로드맵을 그릴 수 있다는 발상이 놀랍다”고 말했다.

구은서/노경목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