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럽 아닌데 어때" 2시간 대기…'헌팅 포차'에 50m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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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 벗고 1m 거리두기 안 해이태원 클럽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 수십 명이 쏟아져 나온 지난 9일 밤 11시30분, 서울 마포구 홍대클럽거리에는 비가 오는 날씨에도 수많은 인파로 북적였다. 한 헌팅(즉석만남) 술집 앞은 대기 줄이 50m까지 길게 늘어섰다. 대기 인원 40여 명 간 ‘1m 거리두기’는 지켜지지 않았다. 이 중 열댓 명은 마스크를 벗고 있었다. 술집 앞에서 만난 윤모씨(22)는 “클럽이 영업을 중단해 대신 헌팅 술집에 왔다”며 “합석만 안 하면 코로나 감염을 피할 수 있지 않냐”고 했다.
테이블 다닥다닥 붙여 즉석 만남
이태원發 확진자 수십명 나오자
'풍선효과'로 강남·홍대 앞 북적
서울시는 이날 클럽 등 모든 유흥주점에 일종의 영업중지 명령인 ‘집합금지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풍선효과’로 헌팅 술집 등에 사람이 몰렸다. 헌팅 술집은 유흥주점이 아니라 일반 음식점으로 등록돼 영업 중단 대상에서 제외됐다. 유흥을 즐기려는 일부 젊은 층은 일산과 성남 등 경기 대도시로 ‘나이트클럽 원정 유흥’을 떠났다. 잠잠했던 집단 감염 우려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헌팅 포차 “2시간 기다려야 입장”
이날 찾은 홍대클럽거리의 한 헌팅 술집은 30여 개 테이블이 모두 만석이었다. 1m도 채 안 되는 간격에 수십 명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서로 자리를 섞어 앉는 경우도 흔했다. 20대로 보이는 한 남성은 낯선 여성 두 명이 있는 테이블에 앉았다. 자리에 앉은 그는 여성들과 건배한 뒤 술을 마셨다. 테이블에 있는 포크로 소시지도 집어 먹었다. 20분 뒤 이 테이블에는 다른 남성이 앉았다. 술집에서 만난 A씨는 “클럽처럼 붙어서 춤을 추는 것도 아니라 크게 걱정되지 않는다”고 했다.
이날 다른 헌팅 술집도 분위기는 비슷했다. 길 건너의 한 헌팅 술집 앞은 대기 줄이 인도를 가득 메워 길을 오가기 힘들 정도였다. 5~6명씩 모여 담배를 피우는 사람도 쉽게 보였다. 서울 대표 번화가인 강남역 주변의 헌팅 술집도 새벽 2시까지 대기 줄이 50m 넘게 이어졌다. 이곳 직원은 “대기자가 워낙 많아 언제 자리가 날지 모른다”고 했다.서울시는 이날 오후 2시부터 클럽 등 유흥시설 2154곳에 2주간 영업 중단을 명령했다. 하지만 헌팅 술집은 일반 음식점으로 분류돼 대상에서 빠졌다.
나이트클럽 ‘원정 유흥’도
일부 사람은 경기 대전 등으로 ‘원정 유흥’을 떠났다. 유흥 관련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서울 밖에서 영업 중인 유흥업소 목록이 실시간 공유됐다. “경기권에서 오늘 영업하는 곳 있나요?”라는 게시글이 속속 올라왔다. 밑에는 “인천 OO, 일산 OO, 부천 OO 열었어요”라는 댓글이 달렸다.한 이용자는 10일 새벽 1시께 ‘부산 M 나이트 실시간 영상’이라는 동영상을 올렸다. 영상에는 남녀 40여 명이 홀에서 뒤엉켜 춤을 추고 있었다. 그는 자신을 해당 나이트클럽 웨이터라고 소개하며 “이 시국에도 찾아주셔서 감사하다”고 했다. 이날 헌팅을 목적으로 하는 카카오톡의 한 오픈 채팅방에는 “클럽은 문을 닫으니 헌팅 술집에서 모이자” “오늘 헌술(헌팅 술집) 가실 분”이라는 대화가 오갔다.
반면 코로나19 확진자가 하루 새 16명(8일 기준) 나온 이태원 거리는 버려진 도시처럼 황량했다. 지난 8일 저녁 7시 세계음식문화거리 500m 사이 1층에 있는 가게 30곳 중 26곳은 손님이 아예 없었다. 포장마차를 운영하는 윤모씨는 “평소 하루 매출이 500만원가량 나오는 곳인데, 오후 9시까지 손님을 단 한 명도 받지 못했다”고 했다.
엄중식 가천대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밀폐된 공간에 사람이 많이 모였다는 것 자체가 감염 위험을 높이는 것”이라며 “장소가 어떤지, 안에서 무엇을 하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모인 것 자체가 문제”라고 말했다.
양길성/최다은 기자 vertig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