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發 확진자 54명으로 급증…우려하던 '조용한 전파'에 당했다

54명 중 11명은 2차 감염

방역당국 "4월 24일~5월 6일
클럽 방문자는 검사 받아달라"
< 한산한 이태원 거리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한 서울 이태원의 한 클럽 입구에 ‘집합금지명령서’가 붙어 있다. 10일 이태원 거리는 방문자가 크게 줄어 한산했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서울 이태원 클럽 관련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8일 만에 54명으로 급증한 것은 이 지역에서 광범위한 ‘조용한 전파’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지난 2일 처음 증상을 호소한 환자는 경기 용인 66번 환자(29·남)를 포함해 최소 두 명이다. 코로나19 잠복기가 평균 5~7일 정도인 데다 환자가 나온 클럽 중 한 곳이 지난달 24일 문을 연 것을 감안하면 이 지역에서 코로나19가 열흘 넘게 소리없이 퍼졌을 가능성이 높다.

이태원發 ‘조용한 전파’
중앙방역대책본부에 따르면 9일까지 43명이었던 이태원 클럽 관련 확진자는 10일에도 11명이 추가돼 54명으로 늘었다. 이들 중 43명이 클럽을 다녀간 뒤 확진됐다. 11명은 2차 감염자다.

중대본은 지난달 24일부터 지난 6일까지 이태원 클럽을 방문한 사람은 외출을 자제하고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10일 발표했다. ‘2일 새벽 0~4시 3개 클럽을 다녀간 사람’을 위험군으로 정했던 7일 지침이 대폭 확대됐다.서울시는 전날인 9일부터 이같이 조사 대상을 확대했다. 확진자가 다녀간 클럽들이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에 문을 닫았다가 ‘완화된 사회적 거리두기’로 바뀌면서 영업을 시작한 시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나백주 서울시 시민건강국장은 “킹클럽과 트렁크는 이달 2일부터 문을 열었지만 소호는 지난달 24일 영업을 재개했다”며 “아직 첫 번째 환자가 누구인지 명확하지 않아 조사 대상을 확대했다”고 말했다.

첫 환자 발생 시점 ‘오리무중’

이태원 클럽 등에서 확산된 코로나19는 아직 첫 번째 확진자가 누구인지 확인되지 않았다. 2일 처음 증상을 호소한 사람이 두 명이지만 이들이 누구에게 감염됐는지는 알지 못한다. 코로나19 확진자에게 증상이 나타나기까지 평균 잠복기가 5~7일 정도인 것을 고려하면 지난달 25일 이후 누군가와 접촉해 감염됐을 가능성이 높다. 서울시는 24일에도 이 지역 클럽을 통해 코로나19가 확산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조사를 진행 중이다.이태원에서 언제부터 누구를 통해 코로나19가 전파됐는지에 따라 피해 규모는 달라질 수 있다. 앞서 신천지대구교회에서 코로나19가 대규모로 확산된 것은 첫 번째 환자가 증상을 호소한 지 12일이 지난 뒤 확인된 데다 소규모 모임 등을 통해 여러 차례 밀접접촉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서울 구로 콜센터에서도 첫 환자가 증상을 호소한 뒤 확진까지 16일이 걸렸다. 이태원 클럽에서 첫 환자가 증상을 호소한 것은 2일, 확인된 것은 6일이다. 확진까지 기간이 4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보다 이른 시점에 감염자가 있었다면 감염 규모는 더 커질 위험이 높다. 더욱이 확진자 중 일부는 지난달 30일부터 이달 5일까지 황금연휴 기간 두세 차례 클럽을 다녔던 것으로 알려졌다. 클럽 특성상 여러 차례 밀접한 접촉이 이뤄졌을 가능성이 높다.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은 “이태원 클럽 집단발병은 밀폐된 시설, 밀도가 높은 공간에서의 밀접한 접촉으로 인한 집단감염”이라며 “54명 중 무증상 확진자가 30% 정도인데다 전파 속도가 굉장히 빠르고 전염력이 높다”고 했다.동선 공개 꺼리는 확진자 추적도 부담

이태원 클럽 등 사적인 공간을 통해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사생활 노출을 우려해 확진자들이 음지로 숨을 위험이 높은 것도 방역당국에는 부담이다.

용산구에 따르면 지금까지 방역당국이 파악한 이태원 클럽 방문자는 지난달 30일~이달 5일까지 7222명에 이른다. 중복인원 1705명을 제외한 5517명에게 연락을 시도해 64%인 3535명과 연락이 닿았다. 여전히 36%는 연락하지 못했다. 업소가 파악한 방문자 정보가 부정확한 데다 사생활 공개를 꺼린 방문자들이 자발적으로 검사 참여를 꺼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태원 등 서울지역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온 장소 중 일부는 외국인과 성소수자가 자주 찾던 곳이다. 사생활 공개에 민감한 외국인은 상대적으로 방역당국 조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동선이 공개되면 그동안 감췄던 성적 취향이 공개될 것을 우려하는 사람도 상당수일 것으로 의료계에서는 추정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다녀간 장소에 대한 정보가 자세하게 공개되면서 성소수자를 향한 혐오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도 이들을 숨게 하는 요인이다.정부도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10일 코로나19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특정 커뮤니티에 대한 비난은 적어도 방역 관점에서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접촉자가 비난을 두려워해 진단검사를 기피하면 그 피해는 우리 사회 전체가 고스란히 떠안게 될 것”이라고 했다. 성소수자 등에 대한 비난을 자제해달라는 취지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