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길동전·흥부전도 아닌 김덕수傳, 어깨가 무겁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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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희 인생' 63년, 음악극으로 올리는 김덕수 명인남사당 일원이던 아버지의 손을 잡고 다섯 살 어린 나이에 ‘광대의 길’로 들어섰다. 남사당 새미(무동)로 전통 연희에 입문했다. 길바닥에서 신명나는 한판을 벌였고, 길거리에서 풍물을 쳤다. 1960년대 말부터 도시화가 이뤄지며 길거리에서 마당놀이를 하기가 어려워졌다. 결국 소극장으로 향했는데 사당패 전원이 오르기엔 무대가 비좁았다. 꽹과리, 징, 장구, 북만 무대에 올리는 ‘사물놀이’를 떠올렸다.
정몽구 재단·세종문화회관 기획
28~31일 M씨어터서 무료 공연
4개 악기가 빚어내는 울림과 리듬에 한국인의 유전자에 내재한 우리만의 맛과 멋을 담았다.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를 누비며 사물놀이를 알리고 대중화하는 데 힘썼다.‘영원한 광대’ ‘예인(藝人)’으로 불리는 사물놀이의 창시자 김덕수 명인(68)의 이야기다. 김 명인의 ‘광대 인생’ 63년이 음악극으로 재탄생한다. 오는 28~31일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무대에 오르는 ‘김덕수전’이다. 현대차 정몽구 재단의 ‘명인전 시리즈’, 세종문화회관의 ‘그레이트 아티스트 시리즈’의 일환으로 열린다.
“세월이 많이 흘렀습니다. 홍길동전, 춘향전은 알지만 김덕수전이라는 제목은 생소하기만 합니다. 어깨가 그만큼 무겁습니다.”
김 명인은 11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김덕수전’은 제 인생의 고해성사 같은 작품”이라며 “나에 대한 이야기만이 아니라 마당에서 으뜸간다는 광대의 삶이 시대와 함께한다는 이야기”라고 말했다.공연은 김 명인이 다섯 살 때인 1957년 연희에 입문한 뒤 낭랑악단, 한국민속가무악예술단을 거쳐 사물놀이를 탄생시키고 전 세계를 누비며 활동해온 여정을 두 시간 분량으로 압축해 보여준다.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가 1년 동안 김 명인을 일곱 차례 인터뷰하며 모은 구술 자료를 바탕으로 대본을 썼고, 중견 연출가 박근형 한예종 연극원 교수가 음악극으로 각색하고 연출한다.
극은 2부, 11장으로 구성됐다. 1부에서는 김 명인의 어린시절부터 청년시절, 사물놀이가 나오게 된 배경을 다룬다. 아역배우 강리우가 ‘어린 김덕수’를 연기하고, 무용수 정영두가 김덕수의 아버지로 상징되는 인물을 춤으로 표현한다. 김 명인 개인의 일대기와 함께 당시 시대상도 엿볼 수 있다. 그의 어린시절을 퓨전 국악밴드 ‘시나위 앙상블’이 연희극으로 풀어내고, 1970년대 해외 문화사절단 ‘한국민속가무악예술단’의 일원이 된 청년시절을 농악극으로 들려준다.
2부는 ‘사물놀이 본’과 김 명인이 함께 무대에 올라 사물놀이 전성기를 그린다. 1978년 초연했던 사물놀이 공연도 보여준다. 김 명인은 “초연 당시 무대에 병풍을 쳐 대청마루처럼 연출하고, 연주자들이 앉아서 북을 치는 ‘앉음반 사물놀이’를 고안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김 명인이 독백으로 당시 사물놀이패 동료였던 이광수, 최종실, 김용배에게 경의를 표하는 장면도 들어간다. 그의 대표작 ‘토끼이야기’도 재해석해 무대에 올린다.마지막 장에선 교육자 김덕수가 등장한다. 1998년 한예종 전통예술원에 연희과를 창설하고, 사물놀이의 ‘신명’을 오광대, 양주별산대, 봉산탈춤 등 이론을 정립하는 모습을 다룬다. 그는 “후배들에게 우리만의 흥을 전수하기 위해 이론화에 힘써왔다”며 “음악적 체계가 닦였으니 우리의 신명을 세계에 퍼뜨리고 싶다”고 말했다. “세계 음악교실에 사물놀이 악기들이 배치되는 게 꿈”이라고도 했다.
공연은 김 명인의 일대기를 정리하는 ‘덕수타령’으로 끝맺는다. 김 명인이 예술인으로 살아오며 느낀 감정과 소회를 진솔하게 털어놓는다. 관객과 소통하는 자리로 꾸밀 예정이다. 그는 “저는 운이 좋아 좋은 연주자들도 많이 만나고 후배들을 가르칠 수 있었다”며 “후배들이 예술인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대우받는 게 중요한데 여기에 남은 인생을 바칠 계획”이라고 말했다. 연출을 맡은 박 교수는 “관객들이 그의 일생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음악에 신경썼다”며 “예술가로서의 김덕수는 물론 유쾌한 얼굴 이면의 인간 김덕수의 이야기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덕수전’은 코로나19로 지친 시민을 위로하는 사회공헌의 일환으로 사전에 예매한 관객에게 전석 무료로 제공한다. 관람권은 오는 18일 오후 2시부터 세종문화회관 홈페이지를 통해 신청하면 된다. 29일 공연 실황은 네이버TV를 통해 실시간으로 중계한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